용어 탄생 배경·과정 추적
“주체적 집짓기 이루어져야”



"오늘날 세상에서 건축을 가장 잘, 아니 좀 더 현실적인 표현으로 건축을 할 수 있는 국가는 일본과 스위스뿐이다. 건축적 업적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스위스는 일본에 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건축 영역에서 세계 최고다."

이 책의 추천을 맡은 건축평론가는 일본 건축을 이렇게 평가한다. '일본 건축은 어떻게 세계건축계의 주류가 되었는가'라는 부제와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인식과 의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 건축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고대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아스카(飛鳥)와 나라(奈良) 그리고 헤이안(平安) 시대를 거치며 일본 건축을 일신한 한반도와 중국의 영향도 기술한다. 핀란드 건축가 마랴 사르비마키의 논증도 잊지 않는다. 그는 호류지와 같은 일본 고대 건축에서 확인되는 비중심축 배치와 비대칭성이 한국 건축 영향의 흔적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이후 일본은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막부 시대에는 더 이상 뭍에서 건너온 손을 빌리지 않았으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균형 사이에서 그들의 건축을 다듬어 나갔다.

책은 건축(겐치쿠)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탄생한 과정을 추적한다. 서구의 아키텍처(Architecture)가 동양에 소개되기 전에는 '건축'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한자 문화권에 속한 한국·중국·일본 등에서는 집 또는 유사한 구조물을 만드는 행위를 영건(營建) 영조(營造) 영선(營繕) 등으로 표현했다. 관건은 아키텍처와 영건 등이 글자만 다른 게 아니라는 점. 학문적·기술적·문화적 영향을 달리하기에 두 행위는 같은 것이 아니다. 이는 아키텍처를 건축으로 번역한 일본이 현대기술을 더 빨리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메이지(明治) 시대에 이르러 아키텍처의 번역어로 '건축(겐치구)'과 '조가(造家, 조우카)'라는 두 단어가 사용됐다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소개한다. 이후 조가가 사라지고 건축이 자리잡은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의 근현대건축을 이끈 건축가들도 등장한다. 서양건축에 일본 건축을 섞고, 일본건축에 서양건축을 접붙인 이들이다. 이 기반 위에 안도 다다오나 이토 도요 등이 세계적 건축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지은이는 우리 건축의 주체적 집짓기를 바라고 있다. 일본 건축 이야기는 그 소망의 발로이다.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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