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오전 화목4통 마을회관에서 농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병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김해지사 검사관이 수분검사를 하고 있다.

"특등급~ 쿵쿵쿵, 여기까지는 1등급…." "이건 2등급."
"뭐라 2등. 한 개만이제이. 어휴~ 2등이 와이리 많노.
다음에 올땐 2등 직인은 아예 가져오지 마소."
"(검사원) 그랴. 다음엔 특등직인만 가져와야것네. 허허."
"꼭 그러이소마. 하하하"

그루터기만 남은 11월의 들녁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2차로 시골길. 김해시내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한 화목동 화목4통 마을회관은 정부공공비축미곡 매입으로 분주했다.
 
50여가구가 대부분 농사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곳은 평소 조용한 곳이지만 이날 아침만큼은 활기로 가득찼다.
 
'쿵짝~ 쿵짝~' 24일 오전 7시 30분. 4분의 4박자의 흥겨운 노래가 마을의 정적을 깬다. "오늘은 수매하는 날이니 조곡포대를 빨리 가져다 놓으라"며 보내는 화목4통장의 신호이다.
 
김철곤(52) 화목4통장은 '아침부터 음악소리가 크다'는 질문에 "(매입할 조곡을) 빨리 내라는 신호다. 이렇게 노래를 틀면 마을사람들이 다 안다. 검사원이 오기 전에 적재해 놓는 게 예의이기 때문에 수 년째 이렇게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농가들 역시 벼 출하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인근에 산다는 한 여성 농부(65·화목4통)는 "40㎏ 조곡포대를 옮겨줄 사람이 없어 아들 내외가 아침 일찍 다녀갔어요. (양곡을) 차에 실어주고 애들 학교 보내느라 바빴을 겁니다. 나락(벼의 사투리)을 펼 때 비가 와서 쉽지 않았는데 좋은 등급을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내, 남동생과 매입 현장을 찾은 김봉권(61·칠산2동) 씨는 "올해는 쌀값이 올랐다지만 농민들은 여전히 불만입니다. 10년 전보다도 가격이 못하거든요. 도시사람들처럼 취미생활을 할 여유는 없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벼 건조할 때는 잠도 못 자요. 일은 힘들고 자재값은 오르고…. 노력한 만큼 결과도 좋았으면 바랄 게 없겠어요"라고 말했다.
 
마을회관 안쪽에선 화목4통 새마을부녀회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추운 날씨에 속을 따뜻하게 데워 줄 어묵국과 매운탕 등 찬 준비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만 해도 마을별로 돌아가며 찬 준비를 했다. 하지만 '나만 사람'(나이가 많은 사람의 사투리)들이 느는 등 준비할 사람이 없어 2년 전부터는 화목4통 부녀회원들의 몫이 되어 버렸다. 김영남 부녀회장은 "6~7명이 새벽에 나와 준비 다 해놓고 아침밥 하러 집에 갔어요. 조금 있으면 다시 나와 잔치 준비를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공공비축미 매입은 제법 쌀쌀한 날씨 속에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오전 8시 30분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김해지사 검사원들이 도착했고, 1차 수분검사와 2차 중량검사 그리고 등급판정까지 불과 1시간 30분만에 조곡 1천여 포대에 대한 매입이 끝났다.
 
검사원이 등급을 크게 외치면 마을에서 자청한 청년들이 포대벼에 직인을 찍는데 특등은 '특', 1등은 '원에 점 하나' 2등은 '원에 점 둘'로 찍혀 대형 트럭으로 옮겨졌다.
 
본격적으로 검사가 시작되자 가장 숨을 죽이는 것은 농민들이다. 등급이 잘 나와야 우선지급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검사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1차 수분검사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한 한 나이든 농부는 "그냥 봐주이소. '나만 사람'이 이걸 어혜 다시 가져갑니꺼"라며 애원했다.
 
▲ 등급 판정을 무사히 통과한 40㎏들이 조곡포대들이 대형트럭으로 옮겨지고 있다.

허공에 특등급이 울려퍼지면 마을 사람들 모두 좋아한다. 특등분위기로 가다 2등 분위기로 전환된다 싶으면 "와이러노. 검사원이 잘 못하나"라고 농담처럼 얘기하다 혹 검사원이 마음 상할까봐 "맞다 2등이네. 농사짓는 사람이 더 잘 알지. 할 말 없네"라며 금방 꼬리를 내린다.
 
"어떤 마을은 특등이 많이 나왔는데 우리 마을은 왜이렀노." "그늘에서 봐서 그렇나." 등 주변 농민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농을 건다.
 
이병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김해지사 검사원은 "농민들이 애쓰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원칙대로 할 수밖에요. 저희도 안타까울 때가 정말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변한 것도 적지 않다. 일단 조곡포대의 매입량 자체가 10분의 1로 크게 줄었다. 톤백(800㎏의 포대벼) 매입이 늘었고, 농협을 통해 매입하는 등 판로가 다양해지며 조곡포대 매입량이 급격히 줄어든 것. 이에 따라 마을별로 있던 정미소도 거의 사라져 지금은 칠산서부동에서 두 곳 정도만이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다.
 
올해 양곡값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매입 현장 곳곳에선 농민들의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자유무역협정(FTA)을 걱정하는 농민들도 있었고, 정부의 대금지급 방식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한 농민은 "정부가 매입가를 정해 주지 않아 일선 농가에선 어디에 팔아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우선지급금을 주고 나중에 동냥하듯 얼마 더 쳐주지 말고 처음부터 매입가를 명시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은 "물가는 다 오르는데 양곡값은 10년 전보다 못하니 수확이 즐겁지만은 않다. FTA체결로 더 힘들어질 테니 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화목4통 정부공공비축미곡 매입은 오전 10시 30분께 일단락됐다.
 
좋은 등급을 받은 농민이건 조금 못한 등급을 받은 이건 마을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막걸리 한 사발을 서로에게 건내고 해안에서 공수해온 횟감을 안주 삼아 다른 마을사람들과도 깊은 정을 나눴다. 한해 동안 땀 흘린 수고로움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리이다.
 
비축미 매입이 있던 날, 화목4통 마을회관은 쌀 농사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숨'과 수확의 '기쁨'이 공존하고 있었다.


TIP >> 정부공공비축미곡 매입가격 어떻게 결정되나
기준가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현재 정부의 매입 기준가는 쌀 정곡 80㎏을 기준으로 해 17만83원이다. 당해 쌀값이 기준가 이하로 하락할 경우 하락한 금액의 85%를 지원하겠다는 것. 예를 들어 11월에서 내년 1월의 양곡 평균시세가 15만 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차액 2만83원의 85%인 1만7075원을 지원하는 셈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해마다 물가는 인상되고 있는 반면 정부의 기준가 17만83원은 수 년째 변함이 없어 농가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민들의 요구 사항을 종합하면 '기준가 인상'과 '매입물량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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