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낭만주의 아울러 미술사 소개
명화 제작과정·특징도 상세히 설명



파블로 피카소는 1951년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제목의 작품을 내놓는다. 한국전쟁 당시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피카소의 신념이 가득 담겨있다.

이 작품의 구도와 배치가 프란치스코 데 고야가 그린 '마드리드의 1808년 5월 3일'에서 그대로 빌려왔다는 사실은 흥미를 자아낸다. 고야의 작품은 당시 스페인을 침공한 프랑스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하는 순간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전한다.

'5일 만에 끝내는 서양미술사'는 이처럼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미술의 역사를 소개한다. 회화와 조각, 건축이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을 전해준다는 저자의 얘기가 관심을 끈다. 미술을 통해 축 처진 어깨를 세울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서양화가인 저자는 원시에서 낭만주의에 이르는 서양 미술을 자세하게 안내한다. '난생처음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공부하다'라는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원화의 색을 살려낸 49장의 그림과 도판 목록이 그림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미술사와 더불어 명화의 제작 과정과 그림 특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그 가운데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이 눈길을 잡는다. 부실한 뗏목을 타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난파선 선원들의 비극을 그린 이 작품의 스케치와 습작들이 소개되고 있다.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 대한 해설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대상을 대각선으로 그것도 거울에 비친 모습을 그린 마네의 기발하고 재미있는 구도는 지금도 흉내 내기 어려운 기법으로 꼽힌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라스 매니나스'도 화가가 그림으로 들어가는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다. 왕의 시선으로 그린 이 작품은 대가들이 교과서처럼 여기는 명작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외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직접 작품들을 보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 내용의 설득력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근·현대 미술 등이 제외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책 제목에 달린 '5일' 역시 옥에 티처럼 여겨진다. 접근하기 어려운 서양 미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는 의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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