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945년 조선시대 사회상
항일운동·친일행위 등 역사 다뤄
어렵고 먼 식민근대사 쉽게 재현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사업회가 꾸려져 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상영된 '암살', '밀정', '박열', '미스터 션샤인'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들도 화제를 모았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제강점기 사람들은 독립운동만 했을까? 친일행위에 맞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투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 경성의 미쓰코시 백화점과 단성사 영화관, 창경원의 동물원은 나들이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영화 '암살'에서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이 만주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하다가 경성에 잠입해 쇼핑했던 곳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자본주의 욕망과 암울한 식민지 현실, 자유와 억압이 교차하는 모순의 공간'이었다.
 
여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조선인들은 먹고사는 문제로 고달픈 일상을 이어갔고, 시대의 그늘 아래 가짜 화폐를 만드는 사기꾼도 등장했다. 청춘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의 사회상을 이 시기에 발생한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분야의 주요 사건들 250장면의 생생한 다큐멘터리로 복원했다. 항일운동과 친일행위의 정치적 풍경부터 식민지적 근대의 일상 풍경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건들을 시대순으로 함께 수록함으로써 균형 잡히고 입체적인 사회상을 재현해 낸다.
 
저자는 당대의 신문과 잡지를 비롯해 역사서와 단행본, 논문 등 수많은 자료를 인용해 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조명한다. 그 뿐만 아니라 신문과 잡지에 실린 광고는 물론 발행된 엽서 등의 자료를 다각적으로 활용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잡다한 생활상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익상에 관한 얘기는 그에 관한 일제 신상 기록 카드 자료와 함께 소개된다. 영화 '박열'에 나오는 아나키스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 영화 '밀정'의 실제 모델인 황옥 경부가 독립운동가인지 아니면 밀정인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스토리 등이 잘 정리돼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생생하고 친근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1920년대 만주에서 청산리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식민지 조선의 학생들은 금강산,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1930년대 간도 폭동으로 잡혀온 조선인들로 서대문형무소가 미어터질 때, 경성 시민들은 세계를 뒤흔든 춤꾼 최승희의 춤사위에 넋을 잃고 있었다.
 
1995년 시가 1000억 원 상당의 고급 요릿집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기증했던(현재 길상사 자리) 김영한 할머니는, 1936년 시집 '사슴'을 출간했던 시인 백석과 사랑하는 사이였던 기생 김영한이었다. 백석의 연인 '자야(子夜)', 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나오는 '나타샤'도 바로 그 김영한이다.
 
일본의 지원을 받으며 개국한 경성제국대학은 아홉 개의 전문학교와 통폐합 과정을 겪으며 오늘날의 서울대학교로 재탄생했다. 1927년 경성 정동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첫 송출을 시작한 경성방송국은 오락 프로그램이 통속적이고 저급하다는 비난에도 살아남아 현재의 KBS로 자리잡았다.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은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사의 한가운데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1902년 '제국신문'에 실린 진고개 목도평 시계포 광고를 통해 시간이라는 근대적 관념이 정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 경찰의 풍기 문란 단속을 피해 과감한 애정행각을 벌이던 모던 보이·모든 걸의 모습과, 댄스를 퇴폐 문화로 간주하고 댄스홀을 금지했던 총독부 경무국장에게 보낸 공개 탄원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회영은 재산을 헐값에 팔아 마련한 돈으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 산위안바오에 신흥강습소를 세웠는데, 이곳은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신흥무관학교는 영화 '암살'의 생계형 독립군 속사포(조진웅 역)가 졸업한 곳이다. 신흥무관학교의 이 같은 내력을 알게 되면, 의열단과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투쟁이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1905년 공간과 시간의 개념까지 바꾼 경부선 철도 개통은 당시 일본이 발행한 엽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문에 실린 스타사이다와 활명수, 정력제 '춘약' 광고, 1920년대 시판된 진로 소주병 사진, 1930년대 최승희 무용 발표회 포스터 등에서는 당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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