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산해정에서

허남철
 

조차산을 등에 업고
나지막히 자리잡은 산해정이
유월 장마비에 흠뻑 젖는다.

개망초 잎보다 여린
이제 겨우 아홉 살짜리 차산을
뒷산에 묻으며 흘린 눈물은
경의(敬義)의 싹을 틔웠고
그 뿌리는 세월보다 더 깊어간다.

짙은 안개에 묻힌
조차산의 전설처럼
남명은 세상인심에 묻히고
또 일제에 말살되고
이데올로기에 가리고
민주주의에 왕따 당하더니,
이제야 안개 걷히듯
베일에 가린 거대한 보물이
세상에 빼꼼이 내다본다.

산해정 선비는 
녹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허왕후가 그랬듯  
그렇게 호연지기를 꿈꾸었으리라.
 



<작가노트>

남명 선생의 경의사상을 생각하며

비오는 날 산해정에 올라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을 생각해본다.

오래 전 산업사회를 지나오며 우리는 자본주의에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권위자들이 출사를 그토록 종용했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남명 선생은 실천적 성리학의 가치관을 확립하며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산해정은 남명 선생의 정신과 젊음이 남아있는 곳이다. 세속살이에 흔들릴 때 산해정에 올라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상처를 씻어내린다.

비오는 산해정은 홍진에 묻은 때를 벗기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오늘도 비를 기다려본다.
 

·사람과 사이 인문사회연구소 부소장
·한국웰-다잉문화발전소 연구원
·산해정 인성문화진흥회 회장
·김해대학교 겸임교수, 김해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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