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보는 관점, '왜' 아닌 '어떻게'
한반도 정세 염려하는 메시지도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인류 최초의 세계 전쟁에서 6500만 명이 동원됐고, 세 제국의 명맥이 끊겼다. 군인과 민간인 2000만 명이 목숨을 잃고, 2100만 명이 상처를 입었다. 자본주의의 영원한 발전을 기대했던 그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자연히 당시를 지배하던 사상과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로 이어졌다. 그 대책의 첫발은 전쟁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야 전쟁이라는 참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몽유병자들'은 이러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원인을 찾는 '왜'라는 접근법은 분석의 정확성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실상을 왜곡해 허상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주된 이유. 책은 "전쟁의 원인을 찾는 작업은 유죄 여부가 초점이 된다"는 한 역사가의 말을 인용한다. 많은 분석과 자료들이 책임지우기로 가득해 진실을 가릴 수 있다는 우려이다.

이 책은 '어떻게'라는 시각으로 1차 세계대전에 접근한다. 그때 핵심 결정자들이 걸어간 길을 밝혀야만 1914년 7월의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들이 자국의 이해관계만을 앞세운 결과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망하지 못했다는 점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방법이다. 저자는 "1914년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고 규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사라예보 살해 자체는 아무것도 야기하지 않았다. 국가들을 전쟁으로 몰고 간 것은 이 사건을 이용한 방식이었다"는 주장도 함께 소개한다. 1차대전의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여겨지는 사라예보 사건을 달리 보는 시각이다.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불가피한 전쟁이기는커녕 오히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저자는 1914년의 현대성을 강조한다. 양극 체제가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변한 현재 국제정세를 살펴보자는 의도이다. 2017년 12월 초 북한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3대 요구 사항을 밝히며 역사책 한 권을 건넸다. '몽유병자들'이다. 100여 년 전 발칸반도의 전철을 한반도가 밟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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