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2000년 전 해안선 따라 인류 이동
 아프리카 탈출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 진화의 역사"



인류가 아프리카 탈출에 처음으로 성공한 것은 약 7만 2000년 전. 아프리카 연안 이주민들은 남쪽으로 홍해(紅海) 어귀를 가로지른 뒤에 아라비아반도 해안을 따라 인도로 향했다. 인류가 홍해의 풍부한 식량을 두고 아프리카를 벗어난 이유는 인구가 증가해 연안 식량 자원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주로 인류는 전 세계로 퍼지게 됐다. 이들의 여정은 주로 해안선을 따라 이뤄졌는데, 그 덕에 아프리카 해안에서 먹던 것과 같은 해산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인류는 인도 해안을 따라 여행해 약 4만 5000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친숙한 조개더미가 있었다. 인류가 힘든 여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조개 덕분이었다. 농업이 탄생하기까지 6만 년 동안 조개는 인류의 해안선 여행에 함께 한 식량이었다. 만약 조개가 없었다면 약 7만 2000년 전의 인류 조상들은 아프리카 탈출에 실패해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아프리카에만 갇혔을지도 모른다.
 
'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는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에는 진화의 역사가 담겨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진화생태학 교수인 저자는 생화학·분자유전학·해부학·지리학·기상학·계통분류학·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접목해 음식에 관한 자연선택이 음식과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보여준다. 과학적 사실과 지식을 흥미로운 서사로 버무려 놓은 유쾌하고 위트 있는 문체가 인상적이다.
 
7장 '고기-육식' 편에 나오는 '인간이 가축에게 촌충을 감염시킨' 사례는 우리의 통념을 깬다. 실제로 촌충의 유충이 파고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으면 인간은 촌충에 감염된다. 약 1만 년 전에 가축이 된 소와 돼지가 인간에게 앙심(?)을 품고 촌충을 감염시켰을 것 같지만, 실은 정반대라는 사실. 약 250만 년 전에 영양을 집단으로 사냥해 먹던 인류의 조상이 영양으로부터 촌충에 감염되었는데, 인간은 이 촌충을 고이 보관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소와 돼지에게 감염시켰다는 것이다.
 
8장 '채소-다양성' 부분도 흥미롭다. 현재 인류가 음식물이나 양념으로 먹는 식물은 4000여 종에 이른다. 식물은 대부분 먹히지 않으려고 독성을 이용한 화학적 방어 체계를 진화시켰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적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하기 때문에 방어 전략을 진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류는 독이 든 식물조차도 맛있는 음식으로 탈바꿈시키는 기발한 방법들을 발견했다. 인류는 요리를 통해 음식물을 연하게 만들고 독성을 약화시켰다. 이를테면 강낭콩에는 독성 물질인 렉틴이 들어 있다. 이 물질은 자연 상태에서 곤충과 진균의 공격을 막는다. 강낭콩을 삶으면 렉틴을 파괴할 수 있다. 강낭콩류가 작물화되면서 흰강낭콩, 호랑이콩, 검은동굴강낭콩 등 온갖 변종이 생겼고 이 중에는 이제 독성 수준의 렉틴이 들어 있지 않은 것도 있다.
 
5장 '수프-맛'과 6장 '생선-향미'에서 우리가 어떻게 미각과 후각을 진화시켜 식물을 비롯한 음식의 화학적 성질에 반응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은 흥미롭다. 12장 '맥주와 포도주-양조'에서 효모가 악마의 음료와 맺은 오랜 진화사적 관계를 추적하며 일찍 취하는 사람과 늦게 취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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