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둘러싼 '기억전쟁' 양상 고찰
가해자·피해자 이분법 벗어난 사고
민족·국경 초월한 기억의 지구화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비극의 역사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가해자와 희생자, 희생자와 방관자, 희생자와 희생자 사이에서 복잡다단한 '기억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억 연구', '기억 전쟁'은 아직 생소한 용어다. 기억 연구는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에 응답해 죽은 자의 억울함을 산 자들에게 전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문서와 기록이 중심이 된 공식 기억보다 개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증언 등 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 있는 '풀뿌리 기억'에 주목하는 것이다.
 
신간 '기억 전쟁'은 트랜스 내셔널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탈민족 담론을 주도해 온 저자가 기억 연구를 통해 홀로코스트,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기억 전쟁의 양상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국가주의·민족주의적 기억 문화와 실증의 이름으로 진짜와 가짜, 가해자와 희생자로 나누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증언에 근거한 실체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기억 연구에서 증언이 중요한 이유는 대체로 힘 있는 가해자가 역사적 서사와 관련 문서를 다루고 있는 데 비해 힘없는 희생자가 가진 것은 경험과 목소리, 즉 기억과 증언 뿐이기 때문이다.
 
증언은 때로는 불완전하고 감정적이며 부정확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과 일본군 '위안부'나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일본 우익들에 의해 실증의 이름으로 무시되거나 그 가치가 훼손되기도 한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증언은 문서와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정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역사적 사료로 봐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인들은 '좋은 이탈리아인'과 '나쁜 파시스트'로 구분해 좋은 이탈리아인인 보통 사람들에게 파시스트들의 잔학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의 경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일본인들로 하여금 자국의 전쟁범죄와 가해행위를 상쇄하고도 남는 희생자로 여기게끔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본군 가미카제 특공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호타루'(2001)에서 보여주듯, 총력전 체제에서 '만세를 부르며 일장기를 흔들고 배웅'한 여성들의 행위는 전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공범 가해자의 모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조선인 가해자들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회피하지 않는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점령지인 싱가포르, 말레이 등지에서 식민지 조선 병사나 군무원들이 현지인들에게 저지른 잔혹한 행동들에 관한 증언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해진 타이-미얀마 철도 부설사업의 강제 노역과 관련해 전범으로 처벌받은 식민지 조선인들은 또 어떤가. 저자는 이들을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자로 기억하려는 한국 사회 공식 기억의 논리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논리는 1941년 7월 나치에 점령된 폴란드에서 유대인 이웃들을 학살한 라우단스키 형제가 학살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은 나치와 소련의 이중 점령으로 고통받은 폴란드 민족이기 때문에 역사의 희생자라고 강변한 자기방어적 논리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식민지 피지배 민족 혹은 피점령 국가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개인의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고방식은 반유대주의나 다름없다는 것인데, 유대인이므로 유죄라는 반유대주의 발상의 극단이 바로 홀로코스트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을 모두 친일행위자로 몰거나 반대로 피해자로 뭉뚱거리는 양극단은 모두 풀뿌리 기억에 대한 공식적 기억의 폭력"이라고 강조한다. 민족, 계급, 인종, 젠더, 세대 등 특정한 이념을 지향하는 공적 기억은 풀뿌리 기억을 향해 기억의 폭력을 행사하기 쉽다는 경고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기억 문화를 살펴보고, 민족과 국경에 갇힌 기억을 가로질러 전 지구적 기억 연대로 나아가는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고 볼 수 있다.
 
나치의 공범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거나 일제 침략의 역사 위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의 역사를 덮어씌우는 등 기억의 정치가 난무하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는다. 터키계 독일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아르메니아 학살을 떠올리고,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가 파괴된 바르샤바 게토에서 흑인 노예들의 아우성을 듣는 등 뜻밖의 장소에서 생면부지의 기억들이 만나 소통하고 연대한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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