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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를 알려면 지폐를 보라책(BOOK)
  • 수정 2019.02.26 15:38
  • 게재 2019.02.26 15:36
  • 호수 411
  • 12면
  • 백태현 선임기자(hyun@busan.com)

 

 42개국 지폐 탄생 비화·도감 설명
 돈 넘어 국가 고유 예술과 시대 담겨
"지폐는 국가를 대표하는 제2 얼굴"



새로 나온 책 '지폐의 세계사'는 세계 각국 지폐에 얽힌 사연과 그 디자인에 숨겨진 놀라운 진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세계 각국 지폐 탄생 비화와 42개국 지폐 도감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대만의 대중 인문학자인 저자는 지난 25년간 97개국을 여행하며 수집한 지폐를 통해 그 나라와 세상의 흐름을 읽어낸다. "모든 지폐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찬란하고 순수한 디자인의 배후에는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 사건과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브롤터에서 발행한 지폐 속 영국 여왕의 머리 옆에 그려진 원숭이는 어떤 의미일까? 철천지원수 종족의 지도자가 한 지폐 위에 나란히 등장한 사연은? 북한이 지폐를 통해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려 한 것은 무엇일까? 루마니아 지폐에는 어떤 비극적인 전설이 담겨 있을까?
 
1995년 중앙아프리카 부룬디에서 새로운 도안의 지폐가 발행됐다. 전 대통령 은다다예의 초상화가 인쇄된 500부룬디프랑 지폐였다. 그런데 2년 후 지폐에서 은다다예 대통령의 초상화가 삭제되고, 그 자리에 전통 조각 도안이 새겨졌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오랜 기간 부룬디는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뿌리 깊은 원한으로 분열과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994년 부룬디 내전이 발발했으며, 이는 르완다 대학살의 전초전이었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부룬디 최초의 후투족 출신 민선 대통령으로서 두 민족 간 화해를 위해 힘썼던 은다다예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3개월여 만에 암살당했고, 내전 후 그를 기리기 위해 지폐에 인쇄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권은 다시 투치족에게 넘어갔고, 그 결과 은다다예가 인쇄된 지폐는 유통되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이후 오랜 고통의 시간을 거쳐 두 민족은 2002년 마침내 휴전에 동의하고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그리고 얼마 후 새로운 지폐가 발행되었는데, 후투족 출신의 전 대통령 은다다예와 투치족 출신의 왕자 르와가소르가 나란히 등장한 도안이었다. 이를 통해 부룬디는 두 민족 간 진정한 화해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1995년 영국 식민지 지브롤터에서 발행한 50파운드 지폐 속의 여왕 머리 옆 원숭이 도안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쥘 베른이 반란의 상징으로 묘사했던, 매우 변덕스럽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지브롤터의 원숭이가 여왕의 머리 옆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비록 반항적인 행동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경건하지 못한 구도와 디자인은 보수 인사들의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상하 의원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여 의견을 나누며 여왕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두려워했지만, 정작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사실은 1954년 대관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엘리자베스2세는 찰스 왕세자를 데리고 대영제국의 식민지를 순방했는데, 그 첫 번째 방문지가 바로 지브롤터였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젊은 여왕과 왕세자는 원숭이 서식지인 거대 바위산을 등반해 주권을 선포했고,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었다. 원숭이가 거대 바위산에서 사라지면 영국의 지브롤터 통치가 끝난다는 미신이 널리 퍼져 있던 점을 감안하면 여왕의 이 같은 행보는 이해가 된다. 결국 원숭이가 등장한 지브롤터 파운드는 대영제국의 영광을 엿볼 수 있는 만화경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지폐에는 이처럼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모든 국가의 지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국가가 숭상하는 위인이나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지폐는 때로는 국가의 전통과 이념을 내포하기도 하고, 통치자의 권력강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1972년 발행된 네덜란드 1000길더 지폐에 등장한 주인공은 스피노자로, 돌돌 말린 머리카락에 집어넣은 지문 디자인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2005년 루마니아에서 발행된 1레우 지폐의 뒷면에는 비극적인 전설이 담겨 있다. 1992년 북한이 발행한 50원 지폐 앞면의 주제는 주체사상으로 주체사상탑이 인쇄돼 있다.
 
지폐는 한 나라의 정체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도구이다. 자국민은 지폐를 매일 접하며 그 나라의 국민임을 확인하고, 외국인은 지폐 디자인을 통해 해당 국가의 이모저모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와 감정을 갖게 된다.
 
이렇듯 지폐는 국기 다음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제2의 얼굴'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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