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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나간 능선 홀로 먼길 가듯 인생을 닮아 있구나(7)작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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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1.12.06 14:27
  • 호수 52
  • 12면
  •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함박정 정상에 서면 생림벌과 한림벌이 다가오고, 멀리 삼랑진도 보인다.

성포마을은 한 해의 갈무리로 한창이다. 마을 언저리에서 무를 수확하고 있는 할머니의 굽은 등마저도 아울러 바쁘다. 그의 인생길을 말해주는 듯, 그의 몸도 작약산 산등성이와 많이 닮아 있다.

이번 산행은 생림면 성포마을을 감싸고 있는 작약산(377.8m) 능선을 오른다. 성포마을 가야산장을 들머리로 해서 이정표~능선~작약산(377.8m)~함박정~풍혈~구천암~임도~성포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다.


생림면 생철리 성포마을 표지석을 지나 카센터 주차장에서 가야산장 간판이 있는 길로 접어든다. 얕은 내(川)가 마을 앞을 지나는데, 초겨울의 고요함이 묻어 있다. 가창오리떼 한 무리가 정갈히 흐르는 물길을 거스르다, 인기척에 놀라 일제히 허공을 박차고 오른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이작초등학교 뒤편. 오른쪽으로 곧 오를 작약산 능선이 보인다. 이미 추색이 익을 대로 익었다.
 
멀리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작약 산에 구천암이 있다더니, 그곳에서 '마음 다잡고 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아침에 내린 비로 둑의 길이 질다. '함박정 2.5㎞' 이정표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억새가 역광에 하얗게 눈부시고, 미루나무 몇 그루 제 이파리 다 떨어내고 무심히 서 있다. 대나무 밭에서는 '이스스-' 겨울바람이 드나들며 사람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시작부터 경사가 조금 있다. 길 위로 떡갈나무 넓은 잎들이 제 이불 덮듯 두툼하고, 그 사이로 고비와 고사리들이 돌 틈에서 아직 파릇하다. 적당히 푹신한 낙엽에 적당히 밟히는 돌멩이들이 산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나무들도 자리를 잘 잡아 새들에게 가지를 내어 주고, 바람 둥지도 틀어 앉혔다. 어디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청아하다.
 
철조망을 쳐놓은 무덤이 길 위에 누웠다. 산짐승들의 유택침입이 빈번한 모양이다. 후손들의 안타까운 효심이 날카로운 철조망 속에서 읽힌다. 무덤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오른다.
 
능선으로 접어들자 바람이 꽤 차다. 제법 많은 무덤들이 들어서 있고, 멀리 부산~대구고속도로로 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우리네 세월도 저들처럼 빠르게 흐르고 있을 터인데, 어디쯤 가 있는지조차 모를 일이다.
 
산을 오를수록 사람의 손이 들 탄 느낌이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 외에는 길의 흔적들이 지워지고, 능선길조차도 가끔씩 끊어진다. 숲으로 둘러싸여 바람과 길손만 길동무 하며 산을 오를 뿐이다. 재촉하는 길마다 온갖 나무의 이파리들이 낙엽으로 떨어진다. 비처럼 눈처럼 생을 다한 것들의 떨어짐이 비장하다.
 
낙엽이 길을 덮어 자꾸 길이 끊긴다.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산이다. 근래에는 사람 왕래의 흔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계속되는 오름길에 숨을 한 번 고르기 위해 잠깐 발길을 멈춘다. 능선의 작은 봉우리 정상이다. 바로 앞에 거대한 봉분이 한 기 보인다. 묘비에 '學生…'으로 시작하는데도 규모면으로 보아 하니 마을 지주의 유택인 듯하다.
 
이 묘지 정상에서 오르막도 한풀 꺾여 잠시 내리막이다. 길옆으로 무척산처럼 떡 버티고 선 바위 하나, 산을 지키듯 늠름하다. 곧이어 오르막. 군데군데 무덤들은 짝을 지어 스쳐 지나고, 능선 길은 깊은 숲길을 걷듯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갑자기 바람이 귓불을 스친다. 첩첩산중, 바람도 첩첩이다.
 
바람과 함께 오르다 보니, 참 적요하다. 돌 틈의 푸른 이끼처럼 세월의 적요함이 묻어난다. 멀리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삿갓 씌운 것처럼 우뚝 솟아있는 것이 경사가 보통 아니다. 후~ 왔던 길이 무색해진다.
 
낙엽과 너들이 섞여 있는 길은 무척 미끄럽다. 전날 온 비에 산행이 더욱 조심스럽다. 그 와중에도 산초나무 어린 가지가 제 잎 꽁꽁 닫고 바람에 흔들린다. 그 어린 것조차 제 옷 여미고 세월의 거친 바람을 견디는 품이 대견하기만 하다.
 
경사가 오를수록 더욱 급해진다. 그만큼 숨소리도 거세지고 바람소리도 거세진다. 거의 두 손 두 발 다 써가며 조심조심 오르고 오른다.
 

   
▲ 진시황제가 찾았다는 동방의 불로초 영지버섯이 자라고 있다.

작약산이 사람 발길 뜸한 산이긴 한가 보다. 경사가 깊진 않지만, 길 옆 참나무 등걸에 운지버섯이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영지버섯 한 뿌리도 검붉은 몸매로 제 빛을 발하고 있다. 진시황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동방의 불로초 영지버섯. 그 영험 있는 물건이 이 불목하니에게도 보이다니, 참으로 길조로다.
 
경사는 거의 극에 달한다.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에 길은 미끄럽고, 무거운 발길은 길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에 걸려 허둥댄다. 길도 돌아서 봉우리의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힐 때쯤 안부에 도착한다. 바튼 숨을 들이쉬는 양지 바른 곳에 하얀 무리의 구절초 꽃이 사람을 반긴다. 그리고 고개 들어보니 큰 바위 봉우리가 버티고 서 있다. 바위 봉우리를 휘돌아 정상에 선다.
 
바위산 봉우리에 서자 비로소 작약산 마루금이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이 제법 길게 펼쳐진 듯싶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아뿔싸! 또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무슨 능선이 이리도 깊은 것이냐? 할 수 없이 다시 조심스레 내리막길을 청한다.
 
쉬엄쉬엄 나뭇가지도 잡아보고 돌멩이도 차면서 산길을 읽는다. 하늘은 질릴 정도로 창백하고 바람은 나무 그늘에서 행패를 부린다. 골이 깊어 새소리든 낙엽 듣는 소리든 크게 공명하며 괜히 사람 마음을 흔들어댄다. 인적 없는 산길의 고적함이 이런 것이리라.
 
한참을 올랐을까? 바람이 너무 사납다. 황소울음을 운다. 아마도 정상이 가까워지는가 보다. 나뭇가지들도 자지러대며 하릴없이 흔들린다. 급기야 여기저기 가지 부러지는 소리 들리고, 밑둥치 뽑힌 소나무들도 눈에 보인다. 얕볼 산이 아님을 오르는 길에서도 알았지만, 널뛰듯 하는 바람과 깊은 능선 앞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잔뜩 웅크리고 오르다 보니 갑자기 조금 넓은 공터가 나온다. 가만 보니 이곳이 정상이다. 공터 같은 곳을 나무숲이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어 주변 조망은 불가능한 지경이다. 나무 사이로 무척산만이 실루엣처럼 언뜻 비칠 뿐이다. 힘들게 오른 것치곤 황망한 느낌이다.
 
   
▲ 작약산 정상을 알리는 팻말과, 여러 산악회의 리본이 만장처럼 걸린 가지 넓은 나무.

정상석도 없다. 정상 입구의 가지 넓은 나무에 '무척산 산줄기 작약산 377.8m'라는 팻말만 하나 걸려 있다. 그리고 가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여러 산악회 리본이 만장처럼 바람에 펄럭일 뿐이다. 정상 주위는 가을이 지나간 자리 뒤라 어수선하다. 모든 것이 스러지고 시들었다. 바람만 맹위를 떨칠 뿐이다.
 
정상에서 내려 함박정으로 향한다. 작약산 정상보다는 낮지만 기실 정상의 조망은 함박정에서 다 누릴 수 있다. 그 기대로 길을 내린다. 내려가는 길도 오르는 길 만큼 험하다. 조심조심 디디며 내린다. 거의 인생의 내리막처럼 조심스럽다. 이미 인적이 끊겼기에, 홀로 먼 길 가는 '사람의 일생' 같은 산이다.
 
이러구러 오르내리다 보니 함박정 정상. 3개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넘어 도착한 곳에서 비로소 김해의 들이 열린다. 생림벌과 한림벌이 가슴을 열고 다가오고, 멀리 밀양과 양산신도시도 아스라하다. 그 사이를 낙동강의 유장한 흐름이 삼랑진에서 세 물길로 합수되는 장관을 보여준다. 진영과 진례, 그 뒤로 주남저수지의 글썽이는 물빛도 비치고, 이들을 감싸 안으며 산과 또 산들이 열을 지어 낙남정맥으로 달린다.
 
함박정 정자에 선다. 성포마을이 눈 아래로 펼쳐지고, 무척산이 지척에서 팔을 벌리고 섰다. 치운 하늘 밑으로 신선봉의 마루금이 뚜렷하다. 하산하기 전 다시 한 번 사방의 풍경을 조망한다. 올라올 때까지 모든 것 숨겨놓았다가, 이곳에서 한꺼번에 다 풀어놓는 모습이다. 바람 드세 잠깐 만에 온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서둘러 풍혈(風穴) 쪽으로 하산한다.
 
계곡 쪽 하산이라 하산길이 험하다. 경사가 쏟아질 듯하다. 거북걸음으로 길을 내리다 보니 곧 풍혈. 작은 전망대도 만들어 놓고, 풍혈을 소개하는 안내문도 세워 놓았다. 걸음을 멈추고 '바람구멍'에 손을 넣어보니 온 몸이 따뜻해진다.
 
다시 하산길. 깎아지른 내리막이 계속된다. 발길에 채인 돌멩이가 끝없이 굴러 내려간다. 낙엽과 마사가 섞인 길이라 더욱 조심스럽다. 동네 산이라고 쉽게 생각하면 낭패를 보겠다. 조심조심 발 디디며 계속 내려가다 보니 구천암 대웅전 지붕이 보인다. 강아지 소리도 가깝게 들리고, 새소리도 불심이 깊은지 이곳에 와서야 자지러지게 지저귄다.
 
   
▲ 삼성각으로 오르는 계단의 이끼가 그 세월 만큼 그윽하고 편안하다.

구천암에 닿자 바로 약수터. 구천감로수(龜泉甘露水)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거북샘 약수가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그 옆으로 삼성각 가는 계단길. 계단의 이끼가 그 세월 만큼 그윽하고 편안하다.
 
구천암에서 임도를 따라 하산한다. 터덜터덜 생각 없이 길을 따른다. 이미 모든 것이 허허로운 계절이다. 이 계절 따라 길을 정해 내려갈 뿐이다. 세월을 보내듯 멀리 까마귀 한 마리 '까악~까악' 무심히 날아간다.


Tip. 따뜻한 훈기가 도는 겨울 작약산 '풍혈'
풍혈(風穴)은 말 그대로 '바람이 나드는 구멍'이다. 높은 산등성이나 산기슭에 있으면서, 사시사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구멍이나 바위틈을 말한다. 말하자면 자연의 신비한 현상 중의 하나이다.
 

   
 
작약산 풍혈은 동굴입구의 지름이 80㎝, 깊이는 4m 정도의 크기로, 성인 서너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넉넉하다. 마치 땅이 움푹 꺼져 생겨난 듯 땅 속으로 굴이 나 있는데, 손을 깊숙이 넣어 보니 따뜻한 훈기가 얼굴에까지 전달된다.
 
이 풍혈은 40여 년 전 성포마을 주민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때는 일반 굴로 알고 있다가, 최근 들어서야 외부 온도와 굴 속 온도가 차이가 큰 '풍혈'로 밝혀진 것. 겨울에는 25도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데, 추우면 추울수록 온도 차가 커져 굴속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풍혈 주위로는 이미 겨울이 진주해 모든 나무들을 무장해제시켰다. 앙상한 숲 발치에는 갈색의 참나무 낙엽들이 뒤덮여 있고, 그 사이로 움푹 꺼져 있는 허방처럼 풍혈이 사람 시선을 잡는다. 온 산이 무채색으로 고단한데, 유독 풍혈에만 푸른 이끼가 파릇파릇 돋아 있다. 마치 가락국 탄강신화의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훈훈한 기운이 갈 길 바쁜 길손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준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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