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넘게 찍은 다큐·인터뷰 정리
 환경파괴 고발 넘어 구조적 문제 조명
"극도의 슬픔 외면 말고 직시할 때"



순간 호흡이 멈췄다. 그리고 가슴이 아렸다. 새의 앙상한 사체와 썩어 없어진 위장 자리에 가득찬 플라스틱. 이 새는 태평양 미드웨이섬에 사는 앨버트로스.
 
이 새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1만 6000㎞를 날아간다. 바다 표면에 떠 있는 먹이를 빠르게 낚아채는 방식으로 그들의 식량을 구한다. 800㎞를 날아야만 한 숟갈 정도의 음식을 얻을 수 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집에 있는 새끼에게 줄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앨버트로스는 바다 위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인 줄 알고 집어 새끼에게 먹인다. 어린 새끼도 어미가 주는 먹이에 든 플라스틱 조각을 먹는다. 이 새들은 플라스틱이 무엇인지 모른다. 수백만 년 동안 그들의 조상이 그래왔던 것처럼 바다가 제공하는 것들을 믿고 먹을 뿐이다.
 
'크리스 조던'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에 죽어가는 앨버트로스의 처참한 현실을 포착한 책이다. '아름다운 눈을 통해 절망의 바다 그 너머로'가 부제인 책의 1부는 크리스 조던이 제작·감독한 영화 '알바트로스' 내용을 옮겨 담았다. 2부는 그가 한국에 와서 청중들과 대화한 내용, 3부는 인디고 서원 등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조던의 사진·영상 작품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인간이 초래한 환경 파괴에 대해 현실 고발을 넘어 개인의 삶을 관통하는 사회적·구조적 문제와 이를 극복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디고 서원은 앨버트로스 최대 번식지인 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8년 넘게 찍은 400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를 들고 온 조던을 지난해 한국에 초청한 바 있다.
 
조던은 "8년 동안 미드웨이섬을 오가며 느꼈던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인간인 우리가 아는 것을 앨버트로스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인간이 쓰고 버린 쓰레기들을 먹이인 줄 알고 새끼의 입으로 건네주고, 궁극에는 그것이 자기 새끼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의 가슴은 무너져내릴 것이다.
 
조던은 앨버트로스가 죽는 비참한 현실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고 토로한다. 죽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어렵고, 기록자로서 그런 장면을 찍어야 하는 의무는 고통스러웠다. 또 감정적인 무기력함의 상태, 극도의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죽어가는 새를 보는 것 자체도 힘들었지만, 새의 배속에 분명히 많은 플라스틱이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한 마리의 새가 죽기까지 기다리면서 영상을 찍은 시간은 보통 8시간. 그는 새가 죽은 직후 아직 체온이 남아 있을 때 그 새의 깃털을 얼굴에 갖다대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죽어가는 새들을 곁에서 지키며 이런 말을 해주곤 했다. "넌 이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될 거야. 너의 이야기를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줄 거야."
 
조던은 처음 미드웨이섬을 찾았을 때는 앨버트로스들이 이미 바다로 떠나서 살아 있는 새를 보지 못했다. 그가 찍은 새의 주검 사진을 보고 많은 이들이 절망감을 느꼈다. 슬픔이 아니라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미드웨이섬을 찾았다. 비행기 문이 열린 순간 앨버트로스가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봤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던은 미드웨이섬으로 향했던 8번의 여정이 변화와 치유의 감정을 주는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조던은 슬픔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는 새들을 사랑했기에 큰 슬픔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픔의 느낌을 경험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 사랑을 느끼는 존재가 됐다고 한다. 사라져 가는 모든 생명을 애도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며, 존재 자체를 사랑하라는 그의 정직하고 진실한 목소리가 깊은 울림을 준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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