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소외된 자 입장서 역사 재조명
고대 로마~근대 흐름따라 4부 구성
"인간 존엄성·평등 가치 회복해야"


 

고대에서 현재까지 기독교 여성사의 거시적 흐름을 짚어낸 책이 나왔다. 한국인 여성 신학자가 쓴 기독교 여성사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이 그것이다.
 
'젠더로 읽는 기독교 2000년'이라는 부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고대에서 현재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여성주의의 관점으로 읽어낸다. '기록에서 배제되거나 기억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살려' 그들의 지위와 역할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을 가해자와 피해자,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편 가르는 것이 아니라, 여성은 '배제된 자의 대명사'이기 때문임을 강조하는 시각에서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을 개혁신학이라 부르고 이를 정통신학이라고 칭해 왔는데, 정통신학으로부터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잔치에 청하는'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안경을 획득하게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약자와 소외된 자의 시각과 관점으로 기독교 역사를 재조명하고 문화적 차이와 시대적 한계를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당면한 시대적 이슈와 갈등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소외됐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가난하고 약한 자를 먼저 섬기는 정통신학의 정통성과 기독교의 본질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잃어버린 역사의 조각들, 주목받지 못했거나 외면당했던 신학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 시대 군상들의 진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기독교 여성사 연구를 통해 체제 전복적이고 권력 저항적이었던 예수의 설교를 복기하여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를 들여다보도록 안내한다. 또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향했던 예수의 시선과 섬김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만인의 평등한 가치를 회복하려 한다.
 
이 책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 기독교 사회와 근대 시민사회를 통과한 서구 기독교가 어떻게 동아시아로 건너와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의 굵은 흐름을 따라 4부로 구성한다. 각 시대마다 중요한 사건들과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면서 주변부 사람들, 희미한 사람들, 채색되지 않은 사람들의 대명사였던 '여성'들을 이야기의 중심부로 옮겨놓고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고찰한다.
 
1부 고대 편에서는 불온 문서로 취급돼 외경이나 위경으로 분류된 '성서 밖의 성서들'을 통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이를 통해 평등 공동체를 꿈꾸며 남녀 차별을 두지 않았던 예수의 가르침이 이후 어떻게 왜곡되어 갔는지 살펴본다. 여성 순교자들의 기록은 어떤 식으로 남성 리더십에 의해 편집되고 각색되었는지,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여성들이 어떻게 남성을 돕는 보조적 존재로 또는 이단이나 마녀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고발한다.
 
2부 중세 편에서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이후 남성 위주의 철저한 계급 사회였던 로마의 위계질서가 교회 안에 자리 잡으면서 여성들이 교회 리더십으로부터 배제되었던 양상을 들여다 본다.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창조되었고, 남성을 꾀어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통로라는 여성 혐오적 교리의 발달로 인해 교회 안에서 더욱 설 자리를 잃어버린 여성들이 광야로 나가 자기 비움의 영성을 키워가게 된 과정을 조밀하게 살핀다.
 
3부 근대 편에서는 교회와 여성이 프랑스혁명 이후 시민사회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고찰한다. 이 시기 여성들은 남성들의 주도 아래 제한된 해방을 경험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마녀사냥은 더욱 광적으로 자행됐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한계를 밀도 있게 다루면서 여성들이 금기에 도전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싸워나간 역동적인 과정을 설명한다. 영국의 감리교 운동과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어떻게 여성 운동의 지형을 변화시켰는지, 특히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복음주의 여성 운동의 한계는 무엇인지 날카롭게 짚어낸다.
 
4부 동아시아 편에서는 근대 시민사회의 보편 가치인 인간 존엄과 남녀평등 사상이 서구 기독교의 해외 선교 채널을 통해 동아시아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아시아 여성들이 얻게 된 수혜와 갈등, 서구 열강의 선민의식과 아시아 문화 인식의 왜곡 등을 다룬다.
 
저자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분투를 '안드로포스를 향한 여정'이라고 부른다. 안드로포스는 사람이라는 뜻의 헬라어로, 하늘을 보는 사람, 영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온전한 인간이나 거듭난 사람으로도 읽힌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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