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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흙시론
  • 수정 2019.03.13 10:19
  • 게재 2019.03.13 10:17
  • 호수 413
  • 19면
  • 김용권 시인(report@gimhaenews.co.kr)
▲ 김용권 시인

'검은 머리위로 유약을 들이부었습니다 속으로 번져야 하는 시간들이 투명하게 건너왔어요 번져서 녹아내리는 시간은 설렘만으로도 1250도, 이 열렬함이 평정의 고도입니다 두드리면 찰랑찰랑 맑은소리가 넘쳐요 몸을 섞던 첫 마음 그대로 실팍하게 살을 펴는 것입니다 네 속으로 녹아내리는 일이 고래로 아득합니다 달구어진 가마에는 아우성도 안치되어 있겠지요 더러는 물러터진 것과 흘러내리지 못해 뭉친 것도 있어요 아침이 오면 내다 버려야 하는 밤의 재료들입니다 어떤 것은 버리지 못해 빛납니다 어쩌면 이번 생의 가마는 본전을 버리고 망설임 없이 백년 후에 열어보는 가마입니다(세라믹 페인팅 전문)'

문화는 변하고 있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문화는 옮겨 다니면서 시간을 흡수하고 유행을 흡수하면서 변용되어 간다. 지금은 전통이 아니라 하는 것도 시간이 흘러서 후대에 가면 전통이 되는 것이다. 또한, 무조건 전통을 고수 한다는 것도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지만 그 한계는 모호하다.

김해는 분청도자의 산실로 그 역사 또한 유구하다. 그러나 분청이라는 화려한 이름아래에는 삶의 명암도 짙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전통의 맥을 이어가려는 도자가 있는 반면 현대적 기법의 실험적인 도자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도공도 많은 실정이다. 이천이나 광주는 현대도자의 기법을 적용하면서 화려한 색체와 형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흙과 불, 인간과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봐야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많은 도예가 들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김해클레이아크도 그 형태를 달리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미술관 외벽에는 건축자재인 타일로 치장하고 있듯이, 이것 또한 흙에서 구워 나온 것이기에 도자의 새로운 형태인 것이다. 요즘 예술의 정의는 다양해지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미술로 손꼽히는 마르셀 뒤샹의 '샘' 이라는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개념의 전환을 통해 변기를 예술적 작품으로 재탄생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예술에 관한 한 이제는 자명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매일 보는 변기도 낯설게 보는 순간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변기도 작가의 의도대로 명확하게  메시지가 담긴다면 새로운 작품이 되듯이, 예술가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창조자이면서 그것을 부정하는 파괴자일 수도 있다.

우리는 토착화된 관념 속에 살고 있다. 이 자명한 관념에는 의문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명한 것에 의문을 가지는 순간부터 의식의 영토는 무한히 확장하게 된다. 어떤 사물이 다른 모습으로 탄생된다는 것에서, 그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신선한 사유와 기발한 상상의 과정이 우리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공감대를 형성 한다는 것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 공감대는 친숙한 것과 낯선 것에 발견과 재발견이 일어나면서 자신의 경험을 깨부수고 참신한 상상력의 갱신으로 나가게 된다. 산업사회의 도래로 일상적인 조건들이 일의 노예로 만들면서 모든 가치가 소비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구조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도 미적 탄생의 구조는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흙에서 태어나고 흙으로 돌아간다. 흙을 다룬다는 것은 고래로 해온 일이지만, 단단한 흙을 통해 다듬고 그리면서 진정한 예술적 자아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여정이라 말할 수 있다. 자연을 베끼고, 자신을 베끼면서 자연 속에 인간과 자연 밖에 인간을 표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이 한 공간에 공존하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문화예술인구의 증가는 다양한 계층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는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이 그만큼 다양해지고 성숙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러한 토대위에 김해예술도 상투적인 본령을 깨뜨리고 재탄생되는 단단한 얼굴을 그려본다. 작가로서의 예술적 체험의 한계는 절망처럼 느낄 수 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이 한계는 있는 것이다. 모자라면 채우고 넘치면 비우는 것이 그릇의 순리인 것처럼, 나도 빈 공간에 설렘만으로도 끓어오르는 세상에 가장 고요한  그릇처럼 놓아본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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