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경쟁에 지친 현대인들
역경 극복한 주인공 보며 위로

 

어릴 적 이부자리에서 풀어놓는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는 마법과 같았다. 매일 그렇게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신기했으니깐. 하지만 기억을 곰곰이 더듬어보면 할머니의 이야기 내용은 대동소이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어린아이의 상상력이 수시로 확장하고 변화했기에 비슷한 얘기라도 달리 들리지 않았을까.

'옛이야기 공부법'은 세계적 보편성과 우리만의 특성을 지닌 한국 설화(說話)에 접근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단순하게 보여 쉽게 접근했다가 이야기 바다에 표류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이야기 하나를 붙잡으라고 조언한다. 그러한 이야기가 자신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자기 서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기 장수'와 '바리공주'를 붙잡고 옛이야기 공부를 시작했다. 학습자가 반드시 읽어 봐야 할 책으로 임석재의 '한국 구전설화'와 아르네, 톰프슨, 우터로 이어지는 '국제설화의 유형'이 제시된다. 또 풍부한 자료가 있는 자료집과 인터넷 사이트들이 소개된다.

우리의 설화와 유사한 외국 이야기를 소개하는 부분이 흥미롭게 읽힌다.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구렁덩덩 신선비'와 '큐피드와 프시케', '선녀와 나무꾼'과 '백조처녀', '바리공주'와 '생명수', '나쁜 형과 착한 아우'와 '두 여행자', '복 타러 간 총각'과 '악마의 황금 머리카락 세 개',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와 '마이다스와 당나귀 귀' 등 비교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이런 닮은꼴들이 나온 이유를 밝힌 여러 주장에 귀가 솔깃해진다.

우리의 옛이야기를 공부하다 보면 조상들이 김치나 된장만 아니라, 이야기도 참 잘 만들었다고 감탄할 때가 많았다는 저자의 경험담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들을 거론하며 옛이야기 속에 가라앉아 있는 집단 무의식을 은근히 흔들어댄다. 옛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았던 지은이의 마음도 그 속에 섞여 있는 듯하다.

소설과 이야기를 구별하는 문예 비평가 발터 베냐민의 설명은 탁견이다. 그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 (중략) 그러나 장편소설의 독자는 고독하다"고 말한다. 부모나 형제에게서 버림받았다고 해서 옛이야기 속 인물들의 인생이 삭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조력자를 만나다. 고독과 경쟁에 내던져진 현대인에게 설화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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