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주민이었다. 김해가 아름다운 도시였기는 했지만, 특별히 김해인이어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김해에 살고 있기에 김해인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에게 김해가 2천년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고, 동북아의 중심지이며 국제적인 교역항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 책이 있다. 나를 김해인으로 다시금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이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김해땅의 두 여인이 동북아의 해양 실크로드를 장악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한 여인은 수로왕비 허황옥이였고, 또 한 여인은 그의 딸 가야공주였다. 일본국의 첫 번째 여왕인 히미꼬가 가야공주였다는 놀라운 이야기다. 글을 쓴 작가 이종기 선생(1925~1995)이 아내와 자식을 두고 홀홀 단신 일본 땅으로 건너가 30년 동안 탐사해 쓴 책이다.
 
저자는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이 자신의 신하를 이끌고 오빠인 장유대사와 함께 이 땅에 정박해 김수로왕과 결혼한 것처럼, 딸인 가야공주 역시 배를 타고 새로운 미지의 땅을 개척해 길을 떠났는데 그 땅이 바로 일본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저자는 일본으로 건너가 출판사 편집 일을 하면서, 틈틈이 일본의 땅을 샅샅이 답사했다. 그런 노력 끝에 가야공주가 일본의 첫 여왕이 되었다는 비밀의 열쇠를 풀게 되고, 자신의 30년 집념을 이 책에 펼쳐 놓은 것이다.
 
이 책은 한 작가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기도 하다. 김해사람도 아니고, 김해 김씨·김해 허씨도 아닌 저자는 역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오롯이 30년 인생을 바쳐 허황옥 일가의 비밀을 찾아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다문화가정의 효시이다. 2007년에 호주제가 폐지되었는데, 허황옥은 2천년 전 이미 남편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고 두 아들에게 자신의 '허'씨 성을 주었다. 그의 딸인 가야공주는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히미꼬 여왕이 되었다.
 
설화는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글이 없던 금관가야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역사이다. 이종기 선생은 책 말미에 "이 역사가 진실이라면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고 썼다.
 
김해는 그동안 '허황옥 축제'를 열어 이 놀라운 문화를 김해 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과 세계인에게 자랑스럽게 알리고자 노력해 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허황옥 축제'를 3년째 치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허황옥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대한민국과 아시아가 하나가 되는 축제를 만드는 일이, 2천년 전 허황옥과 가야공주를 복원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 역사가 진실이라면 여성친화도시 김해에 너무나 어울리는 콘텐츠이기에 빠른 시일 내에 아시아의 축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김해는 나처럼 김해로 들어온 수많은 허황옥들이 있다. 이주민들이 가져온 문화와 이 땅의 문화가 결합해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 내고 그 문화가 김해 발전의 초석이 된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김해인들을 설레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 하선영은
하선영은 1964년 함양에서 태어났다. 경상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여성비평'과 '살류쥬'로 등단하였으며 경남작가회의회원, 경남문협회원, 가야여성문학회동인이다. '허황옥 실버문화축제'를 만들고, 김해여성복지회관에서 '이주여성문화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가야문화상'을 수상했고, 현재 김해시의회의 2선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 '사랑의 슬픈 기쁨'(글나무 펴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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