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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평야는 옛 해상왕국 가야의 무역항이영식 교수의 가야 찾아 일본 간다 ③
  • 수정 2019.03.27 15:41
  • 게재 2019.03.26 15:25
  • 호수 415
  • 8면
  •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report@gimhaenews.co.kr)

  



 

■가야에서 일본 가는 항구들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가야인 들은 남해안 가야의 어느 항구에서 출발해서 일본열도로 건너갔던 것일까요? 지난번에 소개했던 것처럼 '삼국지 왜인전'이 전하는 대로 구야한국, 그러니까 지금 경남 김해의 항구에서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긴 합니다. 그러나 부산의 동래에서 창원, 마산, 고성, 거제, 사천, 진주, 하동에 이르는 남해안 지역에도 가야의 여러 나라는 존재하였고, 이러한 가야의 여러 나라는 제각각의 항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경남 사천시 늑도 전경.


■독로국은 동래가 아니다
우선 '삼국지 변한전'에 왜에 가장 가까워서 왜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고 기록된 독로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독로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로'의 발음인 '동로'가 부산의 '동래'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부산의 동래로 생각해 왔습니다. 마침 동래복천동고분군에서 가야와 왜의 유물들이 한꺼번에 출토되면서 상당한 힘을 얻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동래'란 훨씬 후대가 되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중국의 '봉래'를 따라 '동쪽의 봉래'라는 뜻으로 처음 생겼던 지명으로 이전 가야시대의 '독로'와는 연결되기 어려운 지명입니다.


■독로국은 거제다
그러다가 근래 거제도에서 조선시대 거제현의 관아를 이전 복원하던 중에 발견된 객사의 상량문에 "거제는 옛 독로국의 서울이었고, 상고시대에는 두로국이 있었다"라는 내용이 먹글씨로 쓰여 있었습니다. 이 '두로'의 발음 자체가 '독로'와 가깝기도 하지만, 옛말에서 '두로'는 '두루'로 읽혔을 것으로, '두루'는 우리 옛말에서 두루마기나 치마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조선시대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삼국사기' 등에 신라시대에 거제의 이름이 상군(裳郡)이었던 점에 주목해, 상(裳)의 훈독이 '두루'이므로, 이 '두루'가 곧 '독로'라 한 적이 있습니다. "역시 다산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고성·거제·사천에서도 유물 발굴
해상교역권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 흔적

금관가야보다 먼저 번영했던 사물국
독로국은 왜와 경계 이뤘다고 기록



■거제는 크게 건너는 곳
그런데 거제라는 한자 이름은 클 거(巨)에 건널 제(濟)입니다. 도대체 어디를 건넜다는 것일까요? 먼저 북쪽의 통영에서 건너오는 것으로, 고려시대에 정중부 등의 난으로 폐위되었던 의종, 곧 전하가 건넜던 곳이라는 '전하도목(殿下渡目)'이 있습니다. 통영과 거제는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크게 건너다"라는 표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거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정도는 되어야 '크게 건너다'라는 땅 이름에 어울릴 것 같습니다.
 

▲ 거제 가라산 봉수대.

 
■거제에는 가라산이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 거제도의 지도를 보면 독로(瀆盧)라고 쓰인 옆에 쓰시마(對馬島)가 그려지기도 하고, 거제도 동남쪽은 '일본계(日本界)'라고 기재되어 거제도를 일본과의 경계지로 의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일본계'라 쓰여 있는 거제도의 남단에는 왜적의 침입을 제일 먼저 알리던 가라산(加羅山)봉수가 있습니다. 가야의 가라가 가라산의 지명으로 남은 겁니다. 가야인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던 전통과 가야국의 이름이 지명으로 남았다 해야 할 것입니다.
 

▲ 늑도유적 발굴 30주년 특별전 포스터.


■고대의 국제무역항 늑도
다음으로 일본에 건너가던 가야항구로 경남 사천의 늑도 유적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5~1986년에 부산대박물관이 실시했던 발굴조사로 일찍부터 알려졌던 유적이지만, 최근에 삼천포에서 남해로 건너가는 사천대교를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로 '국제무역항 늑도'라는 이름이 상식처럼 붙게 되었습니다.

늑도의 가야 사람과 개가 뼈 화석으로 출토되고, 삼각점토대토기라는 늑도식 토기가 다수 출토되는 가운데, 반량전과 오수전, 그리고 낙랑토기와 같은 중국의 화폐와 토기가 출토되고, 일본의 야요이 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 늑도 유적에서 출토된 야요이 토기.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국제무역항 늑도와 하루노쓰지'
2016년 7월에 국립진주박물관은 늑도유적 발굴 30주년 기념으로 '국제무역항 늑도와 하루노츠지'라는 특별전을 개최하였습니다. 하루노츠지는 우리가 쓰시마 다음으로 건너갈 이키라는 섬에 있는 유적으로 출토유물이나 유적의 성격이 늑도와 아주 닮은꼴의 유적입니다. 가야의 늑도에서는 하루노츠지의 왜 계통 유물이 출토되고, 왜의 하루노츠지에서는 늑도의 가야 유물이 확인되는 모양새입니다. 이키에 건너가서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늑도는 사천 사물국의 항구였다
그런데 '국제무역항 늑도'를 보유하고 있던 가야의 나라는 사천과 이름이 같은 사물국(史勿國)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천은 물 이름 사(泗)에 내 천(川)으로 쓰는데, '삼국사기 지리지'에 "사수현(泗水縣)은 곧 사물현(史勿縣)이다"라 했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김해의 가락국을 상대로 해상교역권 쟁탈전을 벌이는 포상팔국 중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泗)와 사(史)는 같고, 내 천(川)이나 물 수(水)와 물(勿)은 모두 다 '물(water)'을 소리로 표기하거나, 뜻으로 표기하거나의 차이입니다. 결국 고대의 국제무역항 늑도를 자신의 항구로 삼고 있었던 나라는 사물국이라는 가야의 나라였습니다. 국제무역항으로서 번영했던 시기는 오히려 김해의 가락국(금관가야) 보다 빨라서 기원전 2~1세기경이었습니다. 기원후 3세기경에 김해의 가락국을 공격하고 가락국을 지원하던 신라의 갈화성(지금의 울산항)까지 앙갚음하러 진출했던 것도 김해가 차지하기 시작했던 중국과 일본 상대의 해상교역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어쨌든 간에 늑도는 가야인 들이 처음부터 일본열도로 건너가던 전통적 항구의 하나였음이 분명합니다.
 

▲ 오수전과 반량전.


■가야에서 출항하기
그 밖에 왜 계통의 문물이 확인되는 부산의 동래패총과 복천동고분군이 있는 부산, 성산패총과 다호리유적이 있는 경남의 창원, 동외동패총과 송학동고분군이 있는 경남의 고성 등도 유력하지만, 역시 '삼국지 왜인전'의 기술과 현재까지 발견되고 있는 유적의 빈도와 유물의 출토 양에서 볼 때, 경남 김해 봉황동유적 등에서의 출발을 먼저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해상왕국 가야의 항구가 있을 수 있게 했던 옛 '김해만'은 이미 '김해평야'로 변해 버렸으니 가까운 부산항에서 '가야 찾으러 일본에 가는 여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김해뉴스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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