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슬로푸드·미국 패스트푸드 등
서로 다른 문화가 그려낸 풍경 소개
"향유와 공유가 핵심이 되는 시대"




세계적인 완구 회사 마텔이 1959년 첫선을 보인 바비(Barbie)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문화를 대변해온 인형이다. 통계에 따르면 바비는 전 세계 150개국에서 1초에 3개씩 팔려나가고 있다. 마텔이 인형 수출로 거두어들인 연간 수입은 2013년 기준 13억 달러 (1조 4390억 원). 특히 바비의 옷, 장신구, 다양한 형태의 인형 집과 가구 판매가 인형 자체 매출을 훨씬 뛰어넘는다.
 
하지만 2002년 전 세계에서 19억 달러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이래 바비 인형의 매출과 판매 수익은 갈수록 줄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바비 인형의 외모가 비현실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상에 얽매여 있다는 비판과 함께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비의 가장 강력한 도전자가 아랍에서 등장했다. 2003년 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소재 뉴 보이 토이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출시된 '풀라'라는 인형이다. 풀라의 탄생 배경에는 9·11 테러와 이라크전쟁 이후 서방의 이슬람 폄하와 차별 심화가 있었다. 아랍 사회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로 이슬람의 정체성과 가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풀라의 애니메이션 광고는 풀라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이슬람 소녀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마음가짐과 행동을 설파한다. 풀라가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은 무슬림 여성의 바람직한 생활 습관과 태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문화코드로 읽는 지구'는 비교문화학자인 저자가 서로 다른 문화가 그려낸 의외의 풍경을 포착한 책이다. 사람들이 문화권에 따라 먹고 마시고 일하고 즐기는 방법이 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당연한 일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상하게 여겨지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의 패스트푸드와 유럽의 슬로푸드를 비교한 대목이 흥미롭다. 슬로푸드 운동은 이탈리아의 음식 칼럼니스트인 카를로 페트리니가 시작했다. 그는 1986년 로마의 스페인 광장 한복판에 맥도날드가 들어선 데 격분해 음식의 동질화와 음식 생산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단체를 창설했다. 대표적인 슬로푸드인 프랑스식 식사와 지중해식 식사는 2010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패스트푸드를 발달시킨 미국과 슬로푸드를 보존해온 유럽의 문화 차이는 서로 문화코드가 다른 데 있다. 프랑스 음식의 문화코드는 '쾌락'이다. 프랑스인에게 레스토랑에서 하는 식사는 요리사와 소믈리에, 웨이터, 지배인, 플로리스트 등 많은 연주자가 동시에 연주하는 교향악과 같다. 이에 반해 미국인의 음식에 대한 문화코드는 '연료'다. 미국인은 인간의 몸은 기계이며, 음식의 기능은 그 기계를 계속 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고 본다. 프랑스인이 식사가 끝난 뒤 '맛있다(bon)'라고 인사하는데 비해 미국인은 '배부르다(full)'라고 말한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고 빠르게 배를 불릴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미국에서 성공한 이유다.
 
저자는 "21세기는 자국 문화의 우월성을 놓고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문화의 향유와 공유가 핵심이 되는 시대"라고 말한다. 국가는 다른 문화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국 문화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유지할 방법을 고민하고 기업은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로 글로벌 비즈니스에 임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부산일보=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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