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김해박물관은 2018~2023년 가야 문화 복원 연구사업을 추진한다. 사업내용은 가야사 기초자료 정리, 가야출토품·선주민 연구 등 6개 중장기 계획을 포함한다. 또한 이와 관련한 전시·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는 금관가야의 옛 땅인 김해를 더욱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해뉴스>는 김해시민과 함께 가야 문화 복원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앞으로 5회에 걸쳐 '가야 문화 복원 프로젝트'를 게재한다.
 

▲ 김해 퇴래리 유적에서 나온 종장판갑.

 
지산동 고분군 조사 계기
가야 갑옷 연구 전기 마련
타지역 보다 장식 두드러져
드높았던 전사 위상 짐작



■한반도 출토 갑옷 절반 이상 차지
가야는 철의 왕국으로 불릴 정도로 여러 유적에서 많은 철제품이 확인된다.

특히 갑옷은 그 제작 기술이 뛰어나고 다양한 조형미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철제 갑옷은 전쟁으로 치열했던 당시 고대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또한 거기에 표현된 장식 등은 다양한 의미와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가야 갑옷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최초의 계기는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고적 조사를 통해서다. 당시 일제는 가야의 여러 고분군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그 중 아라가야의 수장층이 묻혀있는 함안 말이산 고분도 조사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확인되는 무덤에 일련번호를 매겼고 그 중 34호분(1917년 今西龍 조사)으로 명명한 무덤에서 갑옷 편의 일부가 출토됐다. 그러나 당시 확인된 자료는 도굴로 인해 원래 모습이 훼손되어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보고서에도 단순한 사실만 기술됐다.
 

▲ 김해 진영읍 여래리 고분군에서 나온 찰갑과 재현품.

 
해방 이후 우리 손으로 본격적인 가야 관련 고고학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이제 막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시기여서, 자료가 부족한 갑옷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조사하면서 갑옷 연구에 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고령 지산동고분군 조사에서 완전한 형태의 갑옷이 출토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갑옷은 이웃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 모양이 유사해 제작지와 계통에 논란이 있었지만 갑옷 연구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사례로 꼽힌다.

이후 1980년대를 지나면서 대성동고분군을 포함한 가야 관련 주요 고분군에서 다양한 형태의 갑옷이 출토됐다. 이는 갑옷이 가야사 연구에 주요 연구 과제로 자리 매김할 수 있게 했다. 매장문화재 조사로 가야 지역에만 현재 300여건이 넘는 갑옷이 출토됐다. 무엇보다 가야 갑옷은 한반도에서 출토된 전체 수량의 60% 이상을 이룬다. 가야뿐만 아니라 당시 삼국시대 갑옷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제작기법·장식성 탁월, 일본에 영향 추정
이제까지 가야 갑옷은 특징을 포함해 제작기법, 주변 지역과의 교류 등 다양한 주제로 연구가 진행됐다. 가야 갑옷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신라를 포함한 다른 지역의 갑옷과 달리 장식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 경남 함안군 마갑총에서 출토된 마갑.

특히 4세기 대표적인 갑옷인 종장판갑에 그러한 모습이 잘 남아 있다. 금관가야의 수장능인 대성동 2호에서 출토된 갑옷은 뒷부분에 오리모양과 같은 형태가 장식되어 있다. 또한 유적 조사를 통해서 출토된 갑옷은 아니지만 김해 퇴래리 지역에서 나왔다는 종장판갑은 갑옷의 앞부분과 뒷부분 그리고 목을 보호하는 부위에도 고사리무늬 장식이 있다. 갑옷의 장식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방어하는데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장식이 갑옷에 확인된다는 점은 갑옷을 입는 사람의 위세나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특수한 목적이 있었음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5세기 이후에는 말에도 갑옷을 입힌 중장기병이 본격적으로 출현한다. 함안 마갑총에서 출토된 마갑과 기마인물형토기의 모습에서 가야 전사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가야 갑옷은 당시 우수한 철기 제작 기술을 가장 잘 보여준다. 오늘날 이것의 설계도나 제작 과정을 자세하게 남겨놓은 자료는 없다. 그러나 유물에 확인되는 제작 기술을 통해 당시 수준을 추정해 볼 수 있는데 '착장기법', '연결기법', '복륜기법'을 들 수 있다.

먼저 착장기법은 갑옷을 입고 벗을 때 몸에서 갑주 탈락을 막고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사용됐다. 두 번째로 연결기법은 철판 여러 매를 단단하고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복륜기법은 철판을 원하는 형태로 재단하고 조립·연결하는 것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갑주를 입었을 때 철이 몸에 닿는 불편함을 방지하고 장식효과도 내는 기법이라 할 수 있다.

가야 갑옷은 이웃하고 있는 왜(일본)와의 교류도 보여준다. 당시 왜에는 한반도의 여러 문화가 전해졌는데 갑옷 제작 기술도 그 중 하나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고대 일본의 철제갑옷인 수신판혁철판갑이 눈에 띈다. 이 갑옷은 가야의 대표 갑옷인 종장판갑과 형태나 제작 기술에서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좀 더 늦은 시기에는 대가야의 대표적인 투구인 광형지판종장판주가 일본열도에서 확인되고 있어서 갑옷 제작 기술을 통한 고대 한일 교류의 일면을 추정해 볼 수 있다.

▲ 전북 남원 월산리 M5호분 출토 투구(왼쪽). 일본의 칸논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투구(오른쪽)와 모습이 유사하다. 가야의 갑옷이 당시 일본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원형 재현 통한 유추 연구' 추세
유적에서 출토된 갑옷은 오늘날 전시실에서 보는 형태처럼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대부분 형태가 일그러지거나 많은 부분이 결실돼 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다. 보존과학을 통해 자료들의 원형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길고 고된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갑옷의 제원뿐만 아니라 특징 등을 상세히 기술하여 향후 복원 등에 참고할 사항 등을 기록하게 된다. 분석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례가 있는데 갑옷 장식을 위해 동물의 털도 이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과거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앞으로 관련 학문 분야 간 연구를 통해 더 많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까지 갑옷 연구는 출토 상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확인되는 사실을 통해 제작 기술 등을 유추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갑옷의 형태를 실제로 재현하려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수백 매의 작은 철판이 가죽 끈으로 엮어져 만들어진 찰갑은 가죽 끈이 삭아서 원형을 알기 어렵다. 재현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갑옷의 모습을 유추해 보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제작 과정이나 어떤 도구를 이용하였는지 등이 검토되는데 일종의 실험고고학 분야라 할 수 있다. 김해뉴스
 



김혁중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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