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신문 실린 400여 점 사진
19세기 중국 풍속 살펴보는 재미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신문 매체는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식민지 소식이 본국으로 전해지고 본국에서 만들어진 신문이 식민지 곳곳으로 퍼져나가면서 세계는 더욱더 긴밀하게 연결됐다. 이에 서구의 유력 일간지들은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화보(畵報)가 실린 신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당대 최첨단 인쇄술로 무장한 유럽의 화보 신문은 막강한 힘을 앞세우며 유럽 바깥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그려냈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바로 신문(저널)에 의한 제국주의, '주르날 제국주의'였다.

'주르날 제국주의: 프랑스 화보가 본 중국 그리고 아시아'는 그러한 신문들의 기록이다. 1850년부터 1911년에 이르는 중국의 모습이 당시 프랑스 신문에 게재된 400여 점의 컬러 화보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중국인 저자들은 '르 프티 파리지앵', '르 프티 주르날' 등 프랑스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중국 소재 컬러 표지와 삽화들을 발로 뛰며 수집해 이 책을 펴냈다. 내용 중에는 영국이나 독일에서 제작한 컬러 삽화도 일부 포함됐다.

프랑스 언론은 청불전쟁, 장가 유역의 반기독교 사건, 청일전쟁, 의화단 운동, 팔국 연합군의 중국 침공, 서태후와 광서제의 회궁(回宮)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화보에 담았다. 중국인 노동자, 티베트 여인 등 서민들의 모습도 소홀히 하지 않아 100여 년 중국 풍속을 살펴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들 화보가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프랑스인들이 보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 평론가는 "프랑스인의 중국에 대한 편견이 영국인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중국인 이미지는 상당이 누추하고 쩨쩨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종군기자들이 그려낸 삽화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중국인의 사고방식으로 잡아내지 못한 중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인들의 심미안이 들어간 우수한 작품도 적지 않아 예술적 가치를 느끼게도 한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을 겪었던 조선 백성도 발견할 수 있다. '노략질: 카자크 기병이 조선의 마을에 들이닥치다'라는 제목의 삽화에서 책장을 넘기던 손이 한참 머문다.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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