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봄눈별·봉황동 거주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 작은 책방들이 많았다. 아니 많았다기 보다는, 작은 책방들이 동네마다 하나씩은 꼭 있었다. 시장 한 켠에, 골목 귀퉁이에, 언덕 위에... 책방들은 그 자리에 오랫동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숨을 쉬게 해준다는 기분이랄까. 모처럼 시원한 물 한 잔을 달게 마신다는 느낌이랄까. 그러한 청량감이 좋아서, 나는 자연스레 서점 주인이 되는 꿈을 간직한 채 성장했다.

그 꿈은 꽤 오래, 어른의 모습을 하고서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내게 꿈을 심어주었던 책방들은 이제 '그 자리'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동네 책방에서 진득하게 책장을 넘기며 서 있는 사람들 역시 '그 자리'에 없다.

생각해보니,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면 최저가로 구매하고도 포인트를 적립 받고, 쿠폰을 발행 받거나 사은품이 함께 오기도 하는데,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참 쉽고 간편한 방법이 아닐 수 없는데, 책을 실제로 넘겨보지 않고도 책방에 직접 가지 않고도, 그리고 책방 주인의 눈치를 받지 않고도 클릭 몇 번이면 책을 살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과연 예의 그 마음으로 책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꿈을 이루겠다는 심정으로 김해 봉리단길에서 작은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잘 된 일이고 축하 받을 일이었다.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축하와 응원의 마음들을 보내주었으므로, 나도 조금은 들뜬 심정으로 문을 열 수 있었다. 기뻤다.

하지만 책방을 한다는 것은 굶어죽지 않으면 다행인 거라카든데. 나 역시 그와 다를 바 없었다. 책을 사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책에 관해 말을 거는 사람은 더 더욱 없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사람들은 한 걸음 물러섰다. 고객과 업주의 관계까지만, 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반응할 때의 무안한 기분이란 떠올리기만 해도 싫다. 책을 그저 진열된 상품으로만 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진만 찍거나 즉석에서 온라인 최저가를 검색해보고는 그냥 나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침묵을 지키며 책방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가끔은 졸다가 파리를 잡기도 하고 장편 드라마를 끝까지 보기도 했다. 혹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70일 가까운 시간을 걸어왔는데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 작은 책방의 역사는 이렇게 저물고 있다.

"어머! 정말이에요?"

책방 문을 닫는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다. 그러나 여전히 책은 팔리지 않는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네에 책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이제 옛것으로만 남겨두려고 한다. 나는 이토록 무척이나 담담하게 책방 영업을 종료하기로 마음먹고 있다.

아울러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책 모으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내 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마음의 빈자리들은 책으로, 또 한 권의 책으로 채우곤 했다. 물론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라는 그림자 역시 책으로 달랠 때가 많았다. 삶의 방법을 누군가에게 진지하게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나는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책을 통해서 배웠다고 생각한다. 책에 담긴 기운에게서 응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는 마음 역시,

'그 자리'에 고이 묻어두기로 했다.

동네책방이 자리하던 그 자리, 나의 꿈이 자라던 그 자리, 사람들이 시간을 펼쳐두고 책장을 넘기던 그 자리. 언젠가의 바로 그 자리가 될 수 있게, 오늘도 텅 빈 책방에서 책의 먼지를 털고 책장을 정리하고 어느 책이든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생각들을 다듬어 본다. 책방에게는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다. 고마운 이유는 아무리 찾아봐도, 언제나 언제나 부족하기만 하다. 안녕, 안녕. 나의 작은 책방.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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