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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매(收買)책의 도시’ 김해…시인의 눈 (34) 수매(收買)
  • 수정 2019.04.09 17:56
  • 게재 2019.04.09 15:48
  • 호수 417
  • 17면
  • 이정심 시인(report@gimhaenws.co.kr)

수매(收買)

이정심 시인

구불구불 달빛 따라 흐느적거리며
가요 한 곡조를 되돌이표처럼 부르며 오신 아버지,
마른 볏단 쓰러지듯 마루에 누운 아버지의 주머니 속엔
벼 수매 등급표가 꼬깃꼬깃 들어 있었다
'등외'

아, 이 한 단어에 아버지의 절망이 나락 알만큼 쌓였으리라
술 한 잔 들이켜지 않고서는 다리가 풀려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으리라

한 잔 두 잔 들이켜는 막걸리 사발에
마음이 풀어지고 다리도 풀어지고
눈도 풀어지고 세상도 풀어졌다
풀어진 아버지의 눈 속에
풀어져 흐르는 달빛

비록 내일이면 다시 절망에 싸일지라도
지금은 풀어져 흐르고 싶으신 게다


<작가노트>

아버지의 기진한 발걸음…

새벽부터 동네는 활기에 차서 술렁이고 리어카에 경운기에 실어 나르는 나락가마니. 여태껏 흘린 땀의 댓가를 결정짓는 날. 수매 보는 날이다.

해가 져도 오시지 않는 아버지의 밥그릇은 아랫목 이불속에 덮여있었다.

아버지의 기진한 발걸음.

남들처럼 아부를 하지 못해서 받았다는 수매등급 곡물표. 아버지가 받으신 등급은 등외였다.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졌고 우리들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바라볼 것이라고는 몇 마지기 논과 밭이 전부였던 살림.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돌아가신지 십여 년이 다 된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지금의 내 나이쯤의 젊지도 늙지도 않은 모습으로 계신다.
 

▲ 이정심 시인

 

·1970년생, '선수필' 등단.
·수필가, 시낭송가, 김해문인협회 회원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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