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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에서 발굴된 가야 유적이영식 교수의 가야 찾아 일본 간다 ④
  • 수정 2019.04.24 13:32
  • 게재 2019.04.09 15:49
  • 호수 417
  • 8면
  •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report@gimhaenws.co.kr)

 


 

 

 

■대한해협을 건너다
지금 부산항에서 일본열도 서북단의 관문인 큐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로 가는 선편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에 승선하든지 입구 왼쪽 위를 올려다보면 「후쿠오카까지 210km」라고 적혀있는 안내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난번에 상세하게 소개드렸던 『삼국지』 왜인전에는 구야한국(구야국) 곧 김해에서 배를 띄워 대한해협을 건너 쓰시마(對馬島)까지 1천리 가고, 쓰시마에서 이키(?岐)까지 다시 1천리 가며, 이키에서 큐슈 북부 해안의 마츠라국(末盧國) 곧 지금의 마츠우라(松浦)까지 또 다시 1천리의 바다를 건너 가야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의 1천리는 지금의 70㎞ 정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결국 가야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가는데 도합 3천리는 210㎞가 됩니다. 어떻습니까? 1,700여 년 전 『삼국지』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 쓰시마 하타카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바다 건너 보이는 불빛이 정겹다.


■쓰시마가 보인다
"보이니까 간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1~2월에 날이 좀 맑기만 해도 김해나 부산, 그리고 거제도의 높은 곳에선 남해 바다에 떠 있는 쓰시마의 산 그림자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밤에는 더 합니다. 반대로 쓰시마 북단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부산 광안리의 불꽃축제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의 아름다운 동그라미가 아주 황홀하게 보인답니다. 부산에서도 쓰시마가 잘 보이지만, 쓰시마에서 부산이 더 잘 보이기 때문에, "보이니까 간다"고 했던 것처럼 왜구의 침입이 그렇게 극성스러웠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쓴 웃음이 절로 지어 집니다.


가야계 도질토기와 유리구슬 등
세형동검은 김해·고성 것과 같아
한국 바라보는 언덕에 고분 조성

 


쓰시마란 이름
사실 이런 쓰시마의 이름이 부산에서 바라보는데서 생긴 이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평생 동안 쓰시마에 살면서 쓰시마의 향토사를 연구해 사후에 기념비까지 세워지게 되었던 나가토메 히사에(永留久?)씨는 부산에서 쓰시마를 보면 '두 섬'으로 보인다. 그래서 '두'는 '투'와 '추'로 발음되다가 '츠(쓰)'로 되었고, '섬'을 뜻하는 우리의 옛말 '세마'가 '시마'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쓰시마의 한자 대마(對馬)는 이미 1,700여 년 전에 기록된 것이지만, 오히려 '두 섬'을 뜻하는 우리의 옛 말 '두 세마'의 소리에 어울리게 '두'는 대(對)로, '세마'는 마(馬)로 표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모양입니다. 중국인이 한자로 표기하기 전에도 이미 고유의 이름이 있었고, 그 소리를 들은 중국인이 한자로 표기하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자가 부쳐진 뒤에 비로소 상도(上島)와 하도(下島)가 서로 마주 상대(對)하는 말(馬)처럼 생겼다는 지명 전승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사실 방위를 생각하면서 지도를 보면 부산 보다는 거제도에서 '두 섬'으로 잘 보일 것 같은데, 지난번에 소개한 거제도의 가라산 봉수에 올라 한 번 확인해 보아야겠습니다. 어쨌든 간에 섬나라 일본의 대명사인 '시마'가 섬을 뜻하는 고대한국어의 '세마'에서 비롯되었다니, 우리말이 없었다면 일본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거제 가라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쓰시마.
▲ 쓰시마 북쪽 하타카스항 전경.

 
쓰시마는 징검다리
712년에 편찬된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는 쓰시마를 '津嶋'의 한자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나루터 진(津)에 섬 도(嶋)입니다. 쓰시마가 나루터의 섬이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특히 『고사기』가 편찬되던 때는 일본이 고대의 법 율령을 정비하면서 국가체제를 완성해 가던 시기로, 쓰시마는 외국으로 건너가는 나루터로 인식되었고, 외국의 선진문물이 건너오던 나루터로 인식되던 전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최초의 외국이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가야임에 틀림없고, 그럴 때 쓰시마란 가야와 왜를 오가는 징검다리의 전통이 지명으로 남은 것이라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쓰시마에 도착하자 만나는 가야
부산항을 떠나 한 시간 남짓이면 쓰시마 북쪽의 히다카츠(比田勝)항에 도착하고, 여기에서 북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가야 관련의 토우노쿠비(塔ノ首)유적을 만나게 됩니다. 쓰시마 북단에 위치한 이 유적에서는 우리 청동기시대 석관묘와 같은 4기의 상자식 석관묘가 발견되었습니다. 작은 석관묘에 불과하지만 왜 계통의 폭이 넓은 청동창의 광형동모(廣形銅?)와 야요이(?生)토기 등과 함께, 중국의 방격규구문경(方格規矩文鏡)과 가야의 적색연질토기와 회청색도질토기, 그리고 가야 성립 이전의 고인돌이나 가야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리제 작은 구슬목걸이가 출토되었습니다. 가야의 물건은 물론이지만, 중국의 문물도 당연히 가야지역을 통해 건너 왔을 겁니다. 나가토메 히사에 같은 현지의 연구자들도 이러한 외래계통 유물들은 당연히 마주 보고 있는 가야에서 왔거나 가야지역을 거쳤던 것으로 보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 새길이 뚫린 토우노쿠비 유적지.
▲ (왼쪽)토우노쿠비 2호 석관묘. (오른쪽)토우노쿠비 3호 석관묘.

 
■고향을 바라보려는 마음?
다만 유적 바로 앞쪽의 언덕을 잘라내어 관통하는 도로를 새로 만드는 바람에 이들 석관묘 유적은 갑자기 높은 절벽위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생긴 절벽 으로 더 높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례적으로 높은 곳에 축조된 무덤임입니다. 고향 땅이라도 바라보려는 주인공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야가 왔다
여기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남쪽으로 달리면 서쪽으로 바다가 열린 미네만(三根灣) 연안의 상·하 2개소에 가야노키(ガヤノキ)유적이 있습니다. 가야에 대한 한자표기가 없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가야'가 잣나무(栢)나 비자나무(榧)를 뜻하는 '카야'가 아니라 '가야'로 발음되었으니, 가야(加耶)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또 '키'도 일본어에서 나무 목(木)으로 표기되기도 하지만, 카야라는 나무가 아니니 이주민이나 외래문화가 '왔다'라는 올 래(來)로도 표기되는 말입니다. 결국 '가야노키'는 "가야가 왔다"라는 이름일 겁니다.
 

▲ 고성군 송천리 고분이 발견된 솔섬
▲ 고성군 송천리 9호 석관묘에서 출토된 세형동검.


■유물이 말하는 가야의 흔적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들입니다. 상하 가야노키유적의 석관묘 등에서는 과거에 '김해식 토기'로도 불렸던 가야 계통의 도질토기와 왜 계통의 스에키가 함께 출토되었고, 세형동검 · 철검 · 철촉 · 철겸 · 유리구슬과 신라계통의 토기도 발견되었습니다. 왜 계통의 스에키(須惠器)는 한 계통의 도질토기를 흉내 낸 것으로 가야인의 이주와 기술의 전파를 짐작케 합니다. 특히 카미(上)가야노키유적에서 수습된 세형동검은 일반적인 한국식 동검과 다르지만, 김해 양동 427호분 출토의 이른바 가야식 동검과 고성 송천리 9호 석관묘 출토품과 똑 같습니다. 여기에다 양동고분군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유리구슬을 함께 생각하면 가야에서 온 사람들이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살았던 흔적으로 생각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해뉴스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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