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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에서 발굴된 가야 유적이영식 교수의 가야 찾아 일본 간다 ④
  • 수정 2019.04.16 16:07
  • 게재 2019.04.09 15:49
  • 호수 417
  • 8면
  •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report@gimhaenws.co.kr)

 






■대한해협을 건너다
현재 부산에서 일본열도 서북단의 관문인 규슈의 후쿠오카로 가는 여객선의 출발점인 부산항 입구에는 '후쿠오카까지 210km'라고 적혀있는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이 안내문을 '삼국지 왜인전' 기사와 비교하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야한국(김해)에서 배를 띄워 쓰시마까지 1000리, 쓰시마에서 이키까지 다시 1000리, 이키에서 규슈의 마츠라국 1000리의 바다를 건너 가야 한다"는 거리를 요즘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210㎞가 되기 때문입니다.
 

▲ 거제 가라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쓰시마.

 
■쓰시마가 보인다
"보이니까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햇살이 맑은 날 김해나 부산, 그리고 거제도의 높은 산에 올라가면 대한해협 건너 쓰시마의 산 그림자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쓰시마 북쪽 히타카쓰에선 매일 밤 부산 광안대교의 불빛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매년 가을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불꽃 축제가 열릴 때면 황홀한 풍경이 넋을 잃는 쓰시마 주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옛날 왜구의 침입이 그렇게 극성스러웠던 이유를 말해 주는 것 같아 쓴웃음이 절로 지어집니다.

 

▲ 새길이 뚫린 토우노쿠비 유적지.
▲ 토우노쿠비 2호 석관묘(왼쪽)와 토우노쿠비 3호 석관묘.

 
■쓰시마란 이름
두 개의 섬이 마주 보는 섬. 쓰시마라는 이름이 부산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바라보는 '두 섬'의 '두'가 '투'와 '추'로 발음되다가 '츠(쓰)'로 바뀌었고 '섬'을 뜻하는 우리의 옛말 '세마'가 '시마'로 되었다고 쓰시마의 향토사학자 가토메 히사에 씨가 기록한 것입니다.
대마도라는 1700년 기록은 '두 섬'을 뜻하는 우리의 옛말 '두 세마'의 소리에 어울리게 '두'는 대(對)로, '세마'는 마(馬)로 표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모양입니다. 중국인이 한자로 표기하기 전에도 이미 고유의 이름이 있었고, 그 소리를 들은 중국인이 한자로 표기하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자가 부쳐진 뒤에 비로소 두섬이 서로 마주 보는 말처럼 생겼다는 전설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사실 방위를 생각하면서 지도를 보면 부산보다는 거제도에서 '두 섬'으로 잘 보일 것 같은데, 지난번에 소개한 거제도의 가라산 봉수에 올라가서 한 번 확인해 보아야겠습니다. 어쨌든 간에 섬나라 일본의 대명사인 '시마'가 섬을 뜻하는 옛날 우리말의 '세마'에서 비롯되었다니, 우리말이 없었다면 일본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쓰시마 북쪽 하타카스항 전경.
▲ 쓰시마 하타카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바다 건너 보이는 불빛이 정겹다.

 

■쓰시마는 징검다리
712년에 편찬된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고사기'는 쓰시마를 '津嶋(진도)'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나루터가 있는 섬이라는' 뜻입니다. '고사기'가 편찬되던 때는 일본이 고대의 법 율령을 정비하면서 국가체제를 완성해 가던 시기입니다. 그 무렵 쓰시마가 외국으로 건너가는 나루터, 외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최초의 외국은 가야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가야와 왜를 오가는 징검다리의 전통이 진도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야계 도질토기와 유리구슬 등
세형동검은 김해·고성 것과 같아
한국 바라보는 언덕에 고분 조성


 

▲ 고성군 송천리 9호 석관묘에서 출토된 세형동검.

■쓰시마에 도착하자 만나는 가야
부산항을 떠나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쓰시마 북쪽의 히타카쓰 항에서 북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가야 관련의 토우노쿠비 유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청동기시대 석관묘와 같은 4기의 상자식 석관묘가 발견된 곳입니다. 이 유적에서 가야 성립 이전의 고인돌이나 가야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리제 작은 구슬 목걸이가 출토되었습니다. 뿐 만아니라 왜 계통의 폭이 넓은 청동창의 광형동모와 야요이 토기 등과 함께, 중국의 방격규구문경과 가야의 적색연질 토기와 회청색도질 토기도 발견되었습니다. 나가토메 히사에 같은 현지의 연구자들 사이에선 이러한 외래 계통 유물들은 가야에서 왔거나 가야 지역을 거쳐온 중국 등의 유물로 보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이들 석관묘들은 이례적으로 높은 곳에 축조된 만들어진 무덤임입니다. 고향 땅이라도 바라보려는 무덤 주인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앞쪽 언덕을 깎아 내어 도로를 내는 바람에 절벽 위에 놓인 무덤이 되어 더욱 간절하게 고향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야가 왔다
여기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남쪽으로 달리면 서쪽으로 바다가 열린 미네만 연안의 위편과 아래편에 두 군데에 가야노키(ガヤノキ)유적이 있습니다. 가야에 대한 한자표기가 없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가야'라는 발음에 '키'도 이주민이나 외래문화가 '왔다'라는 올 래(來)로도 표기되는 말이기 때문에 '가야노키'는 "가야가 왔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추정해 봅니다.
 

▲ 고성군 송천리 고분이 발견된 솔섬.

 

▲ 김해 양동리 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리구슬.

■유물이 말하는 가야의 흔적
결론적으로 가야노키유적의 석관묘 등에서는 과거에 '김해식 토기'로도 불렸던 가야 계통의 도질 토기와 왜 계통의 스에키가 함께 출토되었고, 세형동검·철검·철촉·철겸·유리구슬과 신라계통의 토기도 발견되었습니다. 왜 계통의 스에키는 한 계통의 도질토기를 흉내 낸 것입니다. 가야사람들이 건너가서 기술을 전파한 사실을 짐작케 합니다. 세형동검은 일반적인 한국식 것과 다르지만, 김해 양동 427호분 출토의 이른바 가야식 동검과 고성 송천리 9호 석관묘 출토품과 똑 같습니다. 여기에다 양동고분군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유리구슬을 함께 생각하면 가야에서 온 사람들이 살았던 던 흔적으로 생각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해뉴스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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