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모습 그대로인 골목길.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250여년전 전주이씨 가문 터잡아 6대째 이어온 월봉서원 중심
25가구 70여명 주민 고향 지켜
아파트단지에 둘러싸였어도 세월 비켜간 듯 고즈넉한 옛 풍광

▲ 논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대형 아파트단지 가운데 공원으로 옮겨진 정자나무.
장유면 관동리 덕정마을은 큰 정자나무가 있다고 해서 덕정(德停)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250여 년 전, 전주이씨 가문이 이곳에 터를 잡고 일가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참판을 지내다 낙남(落南:서울에 사는 사람이 남쪽 지방으로 낙향하여 사는 것)한 소요재 이춘흥(李春興) 공이 입향조이다.
 
마을의 중심에는 조선 중종의 덕양군 문중강학소인 월봉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4호)이 있다. 월봉서원은 선대로부터 현재까지 6대째 지역 사립 전통 교육기관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율곡학파의 거목인 월헌 이보림(1902~1972)과 아들 화재 이우섭(1931~2007)의 학문과 삶이 스며든 일신재, 운강재 등은 옛 전통마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때는 40여 호의 일가들이 마을 앞의 넓은 논에 농사지으며 살았으나, 그 논에는 현재 부영·푸르지오 등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넓은 들판 한 가운데서 마을을 지켜보던 정자나무는 아파트 단지 가운데 조성된 공원으로 이식되었다. 원래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100여m 옮겨져 다시 뿌리를 내린 정자나무에는 화재 선생이 그 유래를 밝힌 비가 서 있다. "예전부터 이 마을에 우환이 있을 적에 이 정자나무 아래로 와서 기도를 올리면 영험을 보곤 하였다. 그래서 이 동리의 수호신으로 삼은 적이 오래다"라는 내용이 화재 선생의 한글 친필로 새겨져 있다.
 
▲ 마을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며 옛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덕정마을 이성림 씨
대단지 아파트 도로 건너편에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덕정마을은 마치 세월이 비켜간 듯하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40여호 넘게 살았지요. 마을 앞에 펼쳐져 있던 그 넓은 논 위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논 두락 옆에 있던 아랫마을이 사라졌습니다." 이성림(94) 어르신은 아파트 단지와, 마을에 양옥집 몇 채가 새로 들어선 것 말고는 마을 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부친 이성림 어르신에 이어 마을일을 살피는 이원섭(70) 이장은 "현재는 약 25가구 7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외지로 나가고 부모들이 남아서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마을회관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할머니들은 "배고픈 가객(길손)들은 우리 마을에 들러 옷과 음식을 얻었지. 땅을 얻어 농사를 지은 이들도 있었고. 도움을 받은 가객들이 '인심비'를 세우기도 했다"며 덕정마을의 인심을 말해준다. 갓 스물에 시집 와 팔순 노인이 된 이들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었던 힘든 시기에 가정과 마을살림을 꾸려낸 세대들이다.
 
덕정마을은 월봉서원을 중심으로 마을을 유지해왔다. 이원섭 이장은 "널리 덕을 베풀고, 유학의 맥을 이어 온 마을의 전통을 지켜가려 합니다"라며 마을사람들의 마음을 대신 전해준다. 월봉서원에서는 지금도 논어교실, 국악감상, 문화체험교실이 열리고 있다.
 
▲ 덕정마을의 전통가옥 내부 모습

월봉서원과 일신재 등 마을의 고가들도 사람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다. 도로 건너 아파트 단지의 노년층들과 출가한 자녀의 집을 방문한 어르신들은 간혹 길을 건너 덕정마을을 찾아온다. "어릴 적 외갓집 기억이 나는데 집 구경 좀 해도 되나요, 이런 말을 하면서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재 이우섭 선생의 부인 김문협(81) 씨의 말이 외지인들이 바라보는 덕정마을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설명해준다. 가끔 덕정마을 고가를 배경으로 웨딩 야외촬영을 하기 위해 마을을 찾아오는 예비부부들도 있단다.
 
선친인 화재 선생의 뒤를 이어 학문의 길을 걸어가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이준규(40) 교수는 선대의 유업을 정리하고 마을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을 틈틈이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서문물연구원과 함께 덕정마을의 오랜 시간을 남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