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로 떠난 가상 현대인
수렵·농업 등 인류 발자취 추적

 

'빙하 이후'(After the Ice)는 서기전 2만 년부터 5000년 전까지 세계사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는 빙하 성장이 정점에 이르렀던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빙하기가 끝나는 신석기 농경문화에 이르는 기간이다.

사실 아득한 옛날을 다루는 고고학은 딱딱한 유물을 만질 뿐, 이야기에 약하다. 그저 석기나 토기 같은 물건이 조각 난 채 흩어져 있을 뿐,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750쪽에 가까운 막대한 분량의 이 책에는 화보나 사진마저 귀하니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저자는 이에 일반 독자들이 쉽게 다가서도록 독특한 서술 방법을 취한다. '존 러복'이라는 가상의 현대인을 선사시대 삶의 현장에 보낸다. 그가 직접 초원을 걷고 바위산을 오르며 통나무배를 저어 사람들을 찾아가는 장면은 소설 같은 재미를 독자에게 전한다.

지은이는 서아시아·유럽·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동아시아·남아시아·아프리카로 존 러복이 다니게 한다. 러복은 선사시대와 농업시대의 마을 골목을 걷거나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수렵 채취와 농업이 어떻게 각 대륙에서 이뤄졌는지를 실감 나게 전한다. 그 결과 그들은 결코 원시적이거나 야만적이지 않았으며 빙하시대 말기 수렵 채집민은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인류임을 느낀다.

각 지역은 빙하 이후 다양한 환경을 맞아 다른 길을 걷는다. 인류 문화가 단일한 선을 따라 진화한 것이 아니었다. 수렵 채집에 머무르기도, 재배하다가 다시 수렵 채집으로 돌아간 집단도 있었다.

이는 농업이 능사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지구온난화로 농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개입으로 종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장면을 저자는 냉정하게 직시한다. 잉여생산물 증가로 권력이 집중하고 공동체가 붕괴하는 현상에도 주목하게 된다.

지은이는 여기서 인간의 탐욕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지구온난화에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지구 온도의 증가 속도는 2만 년 전에 비해 낮지만, 인구 밀도는 그때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인구가 희박했던 당시에도 해면 상승으로 대혼란을 겪었던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지금의 지구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만원이다.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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