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

진보 교육감이 주도했던 타 지역들과 달리, 학생·학부모·교사 등 교육의 주체들이 직접 5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련한 조례안을 2012년 도민 3만 7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로 제정 청원을 했으나 보수 교육감의 만만찮은 반발로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허탈하게 부결되고 말았던 '경남학생인권조례'. 결국 이 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박종훈 교육감이 지난 지방선거 때 재편된 정치적 지형을 토대로 2기 취임 후 그 통과 절차를 적극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작년 9월 입법예고한 '원안'에 대한 1,2차 공청회가 반대 측의 조직적이고 완강한 방해와 보이콧으로 파행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자, 6개월 만에 그 의견을 대폭 반영한 '수정안'을 다시 입법예고한 상태다. 하지만 이를 '개악'이나 '속임수'로 받아들이는 찬반양측 모두의 불만이 거센 편이라, 여전히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기서 조례안의 논점들에 대해 일일이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학생인권'이 우리 사회에서 화두로 떠오르게 된 상황 자체에 주목해 봤으면 한다. '인권'은 최상위법인 헌법과 국제협약에서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불가침의 기본권'인데, '학생인권'조례가 굳이 따로 필요하다며 강조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건 바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새롭게 더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당연히 지켜져야 하나 무시되고 있는 권리를 재확인하고 구체화해 명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마치 학생들을 선동해 잘못된 길로 현혹하는 양 호들갑을 떨 까닭이 전혀 없다. 

올 초 실시된 창원지역 청소년 인권실태조사에서,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의 의견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청소년 권리를 존중하는 성인은 반 정도밖에  안된다고 답했다. 또 반 이상이 인권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며, 80% 이상이 부모·교사·단체종사자·본인 순으로 의무적인 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조례 제정에는 70% 정도가 찬성, 2% 정도가 반대했다. 게다가 한국 청소년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꼴찌다. '공부'만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 믿는 부모들의 최면에 걸려 '다양한 개성'이 억눌린 채 현재를 희생하며 유예된 시간을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이 '인간으로서의 행복 추구권'을 누리고 있다 보긴 힘들 터이다. 즉 아이들은 '학생'이기 전에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아직도 일방적인 통제와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본인들과 관련된 대부분의 의사결정과정에서 '교육의 주체'로서 인정되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부당하게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다는 당사자들의 문제의식으로부터 학생인권조례는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그런 사태를 야기한 자괴감과 책임감을 통감하고 인권친화적 학교문화를 조성하도록 노력해야지, 문제 자체가 없는 척 은폐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리고 '인권'이란 '상호존중'을 전제하는 개념으로, 어느 한쪽을 희생해 지켜지는 '학생인권'이나 '교권'은 어불성설이며 그 존재근거를 상실한다. 인권이 보장되면 성적 타락과 비행이 일어난다는 이상한 논리 역시 특정 종교적 신념을 무차별적으로 관철시키려는 무리수처럼 보인다. 이쯤에서 자문해볼 일이다.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싶은가? 다루기 쉬운 순종적이고 획일화된 국민?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민주시민?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분명하다면, 학생도 다를 바 없다. 고3 졸업생들이 남긴 대자보 글귀가 아릿하게 마음에 와 박힌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변화를 경험했고, 목소리를 내면 바뀔 수 있다는 믿음 또한 학습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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