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명곡 교차시킨 에세이
클래식부터 대중가요까지 망라
24종 커피 알맞는 24곡 추천

 

커피는 가장 혁명적이고 급진적인음료였다. 역사적으로 카페는 '위험한 공간'이었고 커피는 태생적으로 '불온한 음료수'였다.
 
커피는 사람들을 모여 앉게 만들고, 깨어 있게 만들고 토론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커피는 전제 군주나 독재자가 가장 싫어하는 세 가지 요소를 갖고 있었다. 유럽 역사를 보면 커피와 카페 문화는 봉건주의에서 계몽주의로 넘어가는 근대화 과정에서 아주 큰 공을 세웠다. 커피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던 17세기 영국에서는 청교도혁명으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명예혁명과 권리장전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기본 틀이 잡혔다. 그 당시 시민들은 커피 하우스에 모여 이에 관한 정보를 얻었고 의견을 나눴다.
 
'베토벤의 커피' 저자는 커피의 혁명성에서 베르디가 1842년에 만든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유명한 합창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떠올린다. 기원전 6세기께 강대국인 바빌로니아로 잡혀가 노예 생활을 했던 히브리인들이 유프라테스강 강가에 모여 앉아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워하는 슬픔의 노래다. 베르디가 이 곡을 만들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의 많은 땅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 상황 속에서 울려 퍼진 합창곡은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던 이탈리아 국민의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이탈리아인에 베르디의 음악은 곧 애국의 상징이었다.
 
책은 음악 평론가이자 커피 로스터인 저자가 커피라는 최고의 기호품과 위대한 음악가들이 남긴 불멸의 명곡을 교차시키며 조망한 에세이다. '한 잔의 커피'에 어울리는 '한 곡의 음악'을 콘셉트로 총 24종의 커피, 이에 걸맞은 음악 24곡을 추천한 글을 실었다. 예를 들어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말러 교향곡을 생각하고, 예멘 모카에서 쇼팽의 '발라드' 이야기를 담아냈다. 개인의 감상적 이야기를 넘어 인문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다. 각 글의 끝마다 '놓칠 수 없는 음반'과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를 실어, 본문에 설명된 곡을 QR코드와 연결해 명연주자의 영상을 곧바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저자는 클래식부터 영화음악·재즈·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음악 강연을 펼치고 있다. 지금은 33년간 서울 생활을 접고 3년 전부터 경남 양산 통도사 강변길에서 음악 카페 '베토벤의 커피'를 경영하고 있다.
 
카페라테와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 5번'을 교차시킨 대목을 보자. 커피와 우유는 최고의 궁합을 자랑한다. 우유는 커피 맛을 부드럽게 하고 커피의 유일한 결점인 칼슘 배출 문제도 해결해준다. 커피에 우유를 섞으면 부드러운 카페라테가 된다. 말러의 음악 세계는 '세기 말의 빈(Vienna)'에서 평생 '죽음의 그림자'를 붙잡고 살았던 사람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의 음악은 에스프레스 더블 샷과 같다. 그러나 말러는 이 쓰고 어두운 세계에 패러디와 유머라는 설탕을 넣고 자연과 사랑이란 우유를 넣었다. '교향곡 1번' 1악장에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 3악장에서 장송행진곡 풍으로 패러디한 동요 등이 설탕이라면 그 유명한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우유의 부드러움이 섞였기에 가능한 맛이다.
 
저자는 '브라질 세하두 옐로 버번'이란 커피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떠올린다. 구수한 풍미를 지닌 이 커피는 상대적으로 산미가 낮고 당도는 높다. 브라질 원두는 평범하지만 편안하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편안한 '사계'가 연상되는 이유다. 저자는 "한 잔의 커피와 한 곡의 음악이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하루 치의 정서적 양식"이라고 말한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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