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간 400만㎞, 지구 100바퀴 돌아
삶과 자연, 나무와 어우러진 '인문학'
재미있는 역사·문학·예술 상식 소개


 
"이 책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나무 보헤미안의 독특한 시각으로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한다. … 나무는 본질적으로 어떤 생명체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에 이르게 한다."
 
"그는 나무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의 인문학에 대한 깊이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식견과 무릇 우리네 삶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읽는다."
 
추천의 글들처럼 신간 '나무의 시간'은 한마디로 나무 인문학 이야기다. 저자가 40년간 400만㎞, 지구 100바퀴를 돌며 축적한 나무와 역사, 건축, 과학, 문학, 예술이 어우러진 깊고 넓은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한국의 목재 사업이 활황을 띠던 시절부터 목재 딜러, 목재 컨설턴트로 일해온 나무 전문가다.
 
샤토 브리앙은 "문명 앞에는 숲이 있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따른다."라고 했다. 존 에블린은 "모든 물질문화는 나무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나무를 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나무를 소재로 톨스토이의 소설과 고흐의 그림, 박경리의 느티나무 좌탁 앞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호크니의 그림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을 보면서 호크니의 고향이 요크셔이며, 그 고장은 바닷바람이 거세서 방풍림을 심었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호크니의 그림 '큰 나무'는 고향 요크셔의 나무다. 호크니를 통해 요크셔의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를 제대로 보는 법도 호크니에게 배웠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60주년 기념 마차는 '영국 역사의 타임캡슐'로 불린다. 그 내부 장식으로 쓰인 나무들의 리스트를 통해서 저자는 영국의 역사와 상징을 불러낸다. 이 리스트는 영국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페리바이 보트, 범선 커티 사크, 제임스 쿡 선장의 인데버호, 존 해리슨이 시계를 위해 제조한 목재 기어, 뉴턴 경 집에 있던 사과나무, 셰익스피어의 뽕나무, 로버트 스콧 경의 1912년 남극 탐험 썰매 등 그야말로 '영국 역사 속 나무의 총집합'이다.
 
이밖에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사과나무로 가구를 만든 메타포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나무를 심는 이유 등에 대해서도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또 이 책은 별별 나무 상식들로 가득 차 있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레바논 국기에는 삼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우리말 성경에 나오는 백향목이 바로 삼나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뽕나무 아래서 비극을 끝냈다. 릴케는 프랑스의 가로수 아래서 시를 쓰고, 슈베르트는 라임나무 아래서 위로를 받았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집의 새 주인은 들이닥치는 순례객을 감당치 못해 뽕나무를 잘라 재목으로 팔아버렸다. 롤스로이스, 벤틀리, 레인지로버를 비롯한 영국의 제조사 브랜드는 내장재에 실제 나무를 쓴다. 이탈리아의 마세라티도 그렇다. 롤스로이스와 마세라티는 마호가니, 로즈우드 등 열대 지역의 나무에다 북반구의 호두나무, 느릅나무까지 사용하고 있다.
 
비틀스의 팝송 '노르웨이의 숲'은 숲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쓰던 소나무 가구였다. 홍송은 잣나무인데, 찬기파랑가에도 잣나무가 나온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소나무야, 소나무야'는 '전나무야'로 불러야 맞다. 먹감나무는 다른 수종이 아니라 감나무 중에서 단면 중심부에 검은 무늬가 있는 나무이고, 빨간 열매가 달리는 토종 보리수는 부처님의 '보리수'와 다른 나무다. 이처럼 흥미로운 나무 상식이 울울창창 펼쳐진다.
 
저자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만난 자연과 사람과 삶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저자는 1970년대 말부터 40년간 캐나다, 북미, 이집트, 이스라엘, 파푸아뉴기니 등 55개국을 다녔다.
 
벤쿠버 북단에서부터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에 난 벌채꾼의 임도, 우리나라가 한 등 끄기 운동을 하던 시절 대낮처럼 밝았던 중동의 크리스마스 전야, 극동에서 온 젊은이의 베니어 합판을 사주던 테네시 제재소 영감님의 선한 눈빛을 저자는 잊지 못한다.
 
나무에 몰두한 목재 전문가의 실감나는 기록을 보면서, 왜 저자가 백남준의 TV박스 앞에서도 '어떤 나무인가'를 살피게 되었는지, 왜 그토록 나무에 천착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의 궤적을 그리는 저자의 나무 인생은 결국 우리 현대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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