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암재단은 지난 15년간 영국인들의 일상생활을 분석한 결과 잘못된 생활습관이 암 발병의 큰 원인이라며 지금 당장 담배를 끊고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또 흡연이나 음주, 비만, 육류 위주 식단 등의 잘못된 생활습관만 고쳐도 암 발병의 절반 가량을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유비무癌'인 셈이다.
 
하지만 일단 발병하면 육체적·정신적·물질적 폐해가 막대하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암을 경험했거나 소중한 이를 잃어본 사람들에겐 이 같은 상식 수준의 예방법보다는 현대의학이 보장할 수 있는 보다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치료법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지난 5일 부산 기장군에서 기공식을 가진 '의료용 중입자가속기센터'는 그런 의미에서 암 환자나 가족들에게 희소식이다. '꿈의 암 치료기'라 불리는 의료용 중입자가속기. 그 원리와 적용 범위, 치료효과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왜 '꿈의 암 치료기'라 불리나
의료용 중입자가속기는 현재 일본에서 3대(치바·효고·군마), 독일에서 2대(GSI연구소·하이델베르그 병원) 등 전세계에서 모두 5대가 가동되고 있는데 그 원리는 이렇다.
 
양성자나 탄소 등 중입자는 가속된 입자선(이온빔)을 물질에 쐬면 일정한 거리를 주행하다 멈추고, 멈춘 지점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이런 물리적 특성을 '브레그 피크(Bragg Peak) 효과'라고 한다. 의료용 중입자가속기는 이런 원리를 이용해 중입자(탄소입자)를 빛의 70% 속도로 가속해 치료시스템과 연결, 몸속 깊숙히 침투시켜 암세포를 정확하게 공격해 파괴할 수 있다.
 
기존 방사선 치료에 쓰이던 X선과 감마선의 경우 암이 있는 깊이까지 가는 동안 방사선 양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치료 효과가 낮았다. 또 이 과정에서 암 부위 앞뒤 정상세포도 치명적으로 손상시키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부작용을 동반한다.
 
이에 반해 중입자가속기는 초당 10억개가 넘는 탄소입자를 투입, 암세포가 위치한 곳에서 방사선 양이 최고조에 이르러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과 전이 가능성이 있는 저산소 세포까지 궤멸시킨다. 이때 암세포 앞뒤의 정상세포에 미치는 피해가 거의 없어 치료 효과도 크다. 여러 종류의 암 가운데 생존율이 낮은 간암, 머리에 암이 발생하는 두경부암, 뼈에 암이 생기는 골육종,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의 직장암, 폐암, 전립선암 등에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장기로 전이만 되지 않는다면 말기암과 재발암도 치료할 수 있다.
 
치료 기간도 현재 보편적인 방법이 암 부위와 진행 정도에 따라 30~40회로 매우 긴데 반해 탄소 중입자 치료는 1~2주 정도로 짧다. 치료준비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치료 시간은 5분밖에 걸리지 않아 바로 일상생활 복귀가 가능해 화학요법이나 외과수술이 힘든 암환자들이 비교적 무리없이 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수용 동남권원자력의학원장은 "의료용 중입자가속기와 치료시스템은 기존의 방사선 치료에 견줘 치료기간이 짧고 부작용이 적다"며 "재발암 등 난치성 암 치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 임상 암치료 효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건강보험 암 진료환자는 모두 62만1천402명으로 2008년보다 12.9%(7만1천176명)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9년 새로 암이 발생해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환자 수도 15만3천760명으로 전년보다 7.6% 증가했으며, 2003년 기준으로 해마다 4천~5천 명씩 늘어나던 신규 암환자 수가 2008년과 2009년 1년 사이 1만 명 이상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암환자 수의 증가 추세는 암 치료법에 대한 의료계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암환자 발병률과 사망률 최상위권이라는 오명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중입자가속기는 암 치료 효과의 일반적 기준이 되고 있는 치료 후 5년 생존율에서 기존 방사선 치료에 비해 약 배 이상의 임상치료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각 부위 평균 치료율로 보면 두경부암은 68%, 폐암 56%, 간암 67%, 전립선암 93%, 자궁암 53%, 골육종 80%, 대장암 55%, 췌장암 44% 등으로 기존 X선에 비해 월등한 효과를 보인다는 게 교육과학기술부와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측의 설명이다.
 

■본격 치료 시기와 남은 과제
지난 5일 착공된 '기장 가속기'는 오는 2016년부터 본격적인 난치성 암 치료에 들어갈 예정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의료용 중입자가속기센터 건립에 총 1천950억 원을 투입, 내년에 공학설계를 마치고 2013~2015년에 가속기와 치료시스템을 만들어 2016년부터 암 환자 치료에 활용할 계획이다.
 
일본과 독일의 중입자가속기가 운동장 트랙 형태인 싱크로트론 방식인 것과는 달리 기장 중입자가속기는 세계 최초로 사이크로트론 방식으로 개발된다. 탄소입자를 나선형으로 가속(4억 전자볼트·400MeV)하는 방식으로 싱크로트론 방식에 비해 개발비가 저렴하고 100% 국내 설계를 통해 독자적인 개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의료용 중입자가속기 상용화가 난치성 암을 앓고 있는 환자와 발병 잠재 일반인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췌장암의 경우 중입자 치료가 힘들며 위암과 대장암 등 소화기 암은 장기의 장벽이 얇아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즉 모든 암을 다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보험적용이 안 돼 비용이 비싼 것도 흠이다. 현재 일본에서 치료 횟수와 관계없이 우리 돈으로 1인당 평균 약 4천500만 원을 부담하고 있다.
 
암 발병 환자 수가 날로 증가하고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과학이 이뤄낸 생명 연장의 꿈과 치료비용 부담의 감소라는 함수관계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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