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보며 찾은 세계정신
서양 사상 이원론적 한계 극복

 

1806년 10월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는 포성을 울리며 프로이센의 예나에 진입한다. 이때 그곳에는 철학사에 이정표를 세울 만큼 위대한 작품을 집필 중인 철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

'정신현상학' 원고의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하기 위해 온 힘을 쏟던 헤겔은 백마 위의 적국 황제를 보고는 '세계정신'을 직감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여섯.

정신현상학은 제목부터 낯설다. 한국 헤겔학회 회장을 맡은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정신이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라고. 정신이 완전히 그 본래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중이다는 의미이다. 부언하면, 여러 과정을 두루 거치면서 비로소 정신으로 드러나며 자신이 정신임을 인식해 나가는 과정을 적어나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가 곳곳에서 고난과 고초를 당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고향 이타카로 되돌아가는 여정과 비슷하다.

헤겔은 이를 통해 사물을 파악하는 의식이 곧 자기를 파악하는 의식과 다르지 않다는 놀라운 철학적 발견을 한다. 이는 서양 사상이 지닌 이원론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후대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물의 진리를 찾아 출발한 헤겔의 발걸음은 이성의 근거한 '자유'란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곳에서는 개인 삶과 인륜적 삶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개인의 주체성과 권리가 보호받으면서도 공동체적 이념과 조화를 이루는 이성적 공동체였다. 각자가 욕망을 승화해 서로를 인정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결과이다. 헤겔은 나폴레옹에게서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헤겔 철학이 철학 그 자체를 의미하던 시대가 있었다. 철학과 헤겔 철학이 동의어나 다름없던 시절이었다. 헤겔 철학을 비판하는 건 철학 그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포스트모더니즘은 헤겔 철학에 망치를 내리친다. 실천과 물적 토대, 이성의 억압성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다.

그렇게 몰락한 헤겔 철학을 다시 읽자고 나선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주인과 노예가 모두 자유인이 되는 방법을 고뇌한 헤겔의 정신이 무겁게 다가온다.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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