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혜정 시조시인

고등학교 무상교육 방안이 확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2학기부터 고 3학생들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하고 내년에는 고 2학년까지, 오는 2021년에는 모든 학년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예정되었던 시기보다 조금 앞당겨지기는 했지만 한국의 고교 무상교육은 OECD 36개국 중 제일 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에 18세부터 투표하는 상황을 노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예산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으나, OECD 국가 중 멕시코가 지난 2012년 무상교육을 실시한 것이 한국보다 7년 빠른 것을 보면 '지각' 도입임이 확실하다.

중앙정부와 교육청에서는 이번 무상교육을 통해 공정하고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서민층의 학비 부담을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가 눈부신 발전을 하였고 서민들의 생활이 크게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학비가 부담스런 서민층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한 예능 방송에서 지금은 성공을 한 모델 겸 연예인이 어려웠던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적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고3 때 전교 1등으로 취업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철야와 야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 허리와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 그 후 며칠 동안 누워 있기도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했지만 병원비가 아까워 파스로 버텼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고등학생이었던 2000년대는 우리나라가 그리 못 살았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2019년인 지금도 예전의 그처럼 생계에 허덕이며 학비 때문에 병원비를 치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있다면 마땅히 그들의 학비부담은 이제 정부가 덜어주어야 한다.

문득 1970년대 후반 지금 50대들의 고등학교 시절도 떠올려본다. 그 시절은 학비를 납부해야 했던 기간이 지나면 행정실에서 방송으로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한 후 학생들을 불러다 재촉을 했다. 나도 호명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는데 형제가 많아서 넉넉지 못한 살림이었던 관계로 자주 불려 다녔다. 행정실에 불려 다니던 일은 얼마나 끔찍했던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몇 년 동안이나 행정실에 불려가는 꿈을 꾸곤 했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가 무상교육이 되고 이어서 중학교, 점차적으로 고등학교가 무상교육이 되는 것을 지켜보자니 감회가 깊다. 아무리 세상사는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저소득층 자녀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고, 학부모들도 학비를 대느라 등골이 휘고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고3부터 점차적으로 시행할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 자녀부터 시행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된 모양이지만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떠올리면 결코 완벽한 장치는 없는 것 같다.

2014년 2월 송파구에서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세 모녀가 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집세와 공과금으로 70만원이 든 봉투와 유서를 남긴 후 번개탄을 피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이 있다. 유서로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집 주인에 남겨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고 정부의 취약 계층 발굴 제도를 탓하기도 했다. 세 모녀는 세상에 빚을 지기 싫다며 꼬박꼬박 공과금을 제때 내왔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아무리 저소득층자녀라 할지라도 학비는 제때 내 왔다거나 서류상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여건에 처해 있다면 그들이 겪고 있을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기에 고3부터 점차적으로 모든 고3에게 시행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현실이 된다고 한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의 필요성이 공감을 얻은 만큼 이번 정책은 두 손 들어 환영하며 순조롭게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들뢰즈나 니체가 지적했듯이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나중에 행복할 수는 없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삶이 다른 어떤 시간의 삶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자식 교육시키느라 자신들의 삶은 돌볼 수 없었던 탄식을, 잃어버린 세계와 잃어버린 행복에 대한 탄식을 더 이상 들어서는 안 된다.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