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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곳곳에서 발굴되는 가야계 유적이영식 교수의 가야 찾아 일본 간다 ⑤
  • 수정 2019.04.30 17:28
  • 게재 2019.04.23 17:13
  • 호수 419
  • 8면
  •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report@gimhaenws.co.kr)







■쓰시마 향토 자료관에서 만나는 가야
지난번에 쓰시마에 막 도착해서는 "가야가 왔다"라는 이름의 가야노키(ガヤノキ) 유적을 소개했습니다만, 바로 근처에 거기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미네쵸((峰町) 역사민속자료관이 있습니다. 1989년에 개관했던 아주 작은 마을자료관에 불과하지만, 가야사나 고대한일관계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제법 가슴 설레게 하는 곳입니다. 전시되어 있는 유물이 많다고 할 수도 없고, 시설이 좋다고 할 수도 없지만, 오래 전에 규슈영남고고학회 회원들과 함께 찾았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경남 김해의 가락국(금관가야)이나 고성의 고자국 '쇠(소)가야' 등에서 빈번히 출토되고 있는 입 큰 작은 단지(광구소호), 작은 그릇 받침(소형기대), 머그컵 모양의 손잡이 잔(파배) 등이 우리를 반겼기 때문입니다.
 

▲ 토요타마쵸 향토관 전경.


■미네쵸 역사·민속 자료관
이것들은 에비스야마 유적에서 출토된 것들로 지금은 이름표에 '가야계 토기'라고 당당하게 쓰여 있습니다만, 15년 전 2002년 7월 탐방 때는 그저 '한국의 토기'라고만 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이라면 우선 의심하고 보는 우리의 시선처럼 무언가를 숨기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동안 충분치 못했던 가야고고학의 성과와 전파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근년의 가야 고고학 자료의 축적과 가야사 연구의 진전을 실감케 하는 대목입니다. 이런 가야계통의 토기들이 가야노키 유적에서 출토된 가야식 동검(?)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 겁니다. 일본열도에서 가야 찾기를 시작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다만 올 3월부터 이즈하라에 새 박물관이 생기는데, 그 이전을 위해 잠정 폐관된다고 하니 당분간 이 유물들의 관람은 유보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미네쵸 역사 민속 박물관 앞 모습.


■쓰시마국 국읍의 가야 색
2000년 10월 28일 자 '아사히신문'은 미네쵸 교육위원회가 대형 마을 유적인 미네(三根) 유적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삼국지 왜인전'에 기록된 쓰시마국의 국읍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약 7~8천㎡ 공간에서 확인된 100여 개의 기둥 자리는 적어도 3~4채의 창고형 건물과 2채 이상의 움집이 자리했음을 보여주었는데, 발굴조사단은 10배 이상 되는 유적이 분포할 것으로 추정하였답니다. 여기서 출토된 1만점 이상의 야요이 토기와 고분시대 스에키 같은 왜 계통의 토기와 함께, 적지 않은 낙랑토기와 가야토기 등이 출토되어 당시에 활발했던 국제교류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여기에 같은 미네쵸의 키사카(木坂)유적에서 출토된 한국식 동검 자루와 다음 토요타마쵸 향토관에서 만나게 되는 카라사키(唐崎)유적 등에서 출토된 당시 최고급의 청동유물과 가야토기 등을 함께 고려한다면, 약 2천 년 전의 쓰시마에서 최초의 정치체가 성립하고 경영되던 과정에 가야인의 이주나 가야국의 영향이 적지 않았음이 추정됩니다.
 

▲ 에비스야마 유적에서 출토된 가야계 토기.


굽다리 접시, 동검 손잡이 장식…
전형적인 메이드 인 코리아 유물
당시 활발했던 국제 교류 엿보여 
쓰시마국 성립에 크고 많은 영향



■은근한 코치(?)
더구나 김해시 대성동고분박물관에 장서를 기증하고, 엊그제 4월 19~20일의 가야사 국제 학술회의에 오셨던 후쿠오카대학의 타케쓰에 준이치 교수는 미네유적에서 창원의 다호리유적이나 김해의 가야의 숲 3호 목관묘 등에서 출토되는 주머니호 2점이 출토되었음을 슬그머니 알려 주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아직 공표되지 않은 사실인 만큼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만, 당시 수장 간의 교류나 쓰시마국의 성립에 가야적 영향이 다대했음을 알기에 충분한 내용이었습니다. 
 

■토요타마쵸향토관
다시 차를 타고 남쪽으로 30~40분 정도 달리면 미네쵸자료관보다 조금 더 큰 토요타마쵸 향토관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보다 확실한 가야 관련의 유물 몇 점을 만나게 됩니다. 1948년에 발굴되었던 쿠와바루 고분에서 출토된 손잡이 잔은 아라국(아라가야)의 함안 도항리 31호분과 거칠산국의 부산 동래 복천동26호분의 출토품과 아주 유사하고, 김해의 대성동고분군과 예안리고분군, 동래 복천동53호분 등에서 출토된 손잡이 잔과 굽이 달린 손잡잔을 닮았습니다. 또한 1950년에 조사된 스스우라사키 유적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는 주로 고성·사천·진주 등에 분포하는 '쇠(소)가야' 계통의 토기와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던 고분의 형식에 대해 발굴당시에는 그 계통을 알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가 당시의 발굴조사사진을 보면 가야계통의 수혈식 석곽(석실)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발굴당시 만해도 우리 쪽 가야고분의 발굴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가야 계통의 카라사키 유적
토요타마쵸 향토관에 전시되어 있는 스스우라유적의 패널에는 카네카케사키 유적과 키타하나노 유적이 함께 소개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가야계통의 도질토기가 출토되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전의 조사라 상세한 보고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야의 어원인 '(카라=加羅=韓=唐))'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카라사키(唐崎)유적에서도 중국계통의 청동제 차마구(車馬具)와 함께 한국식 동검의 손잡이가 출토되었는데, 김해 양동리고분군을 비롯한 가야지역에서 곧잘 출토되는 유물입니다. 다만 현재 이 유물들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어, 우선은 사진만 참고하시고 후에 도쿄에서 가야인의 흔적을 찾을 때 다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 토요타마쵸 향토관 내부 전시실.
▲ 사호시게노단 유적에서 출토된 가야식 동검.(왼쪽)김해 양동 427호분에서 출토된 가야식 동검.


■화천과 가야식 동검
1977년에 토요타마 마을사람에 의해 신고되었던 사호시게노단 유적에서도 가야지역과 깊은 관련을 보여주는 청동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한국식 동검 손잡이 끝막음 장식(검파두식) 4점, 청동말방울 1점, 변형세형동검 1점, 화천 1점 등이었습니다. 화천은 앞에서 소개했던 대로 김해 회현리 패총(봉황동유적)의 출토품이 워낙 유명해서 '해상왕국 가야' 또는 '해상왕국 가락국'의 실재를 웅변하는 유물임을 몇 번이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손잡이 끝 막음 장식은 가야지역을 비롯해 고대 한국의 유적에서 곧잘 발견되는 전형적인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유물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 전의 수습조사에 참가했던 규슈대학의 연구자들도 한반도의 수입품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더구나 조사자들이 변형세형동검이라 명명했던 것은 김해 양동리 427호분 등에서 출토되어 우리가 가야식 동검이라 부르는 것과 아주 흡사합니다. 가야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는 유물들임을 알아야겠습니다.김해뉴스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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