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가야사 국제학술회의가 지난 19~20일 국립김해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김해시가 주최하고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가야사 국제학술회의에는 "가야 기마인물형 토기를 해부하다"라는 주제 아래 한국·중국·일본 3국의 학자 13명이 연구 발표에 이은 토론을 벌였다. 이날 제25회 가야사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한 연구자들의 발표 내용을 요약해 본다.
 

▲ '기마형 인물 토기를 해부하다'를 주제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종합 토론에 나선 발표자들. 사진 제공=인제대 가야문화연구소

 
■기마 인물형 토기
   낙동강하구나 함안권에서 만든 것 추정

 
이정근,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 기마 인물형 뿔잔의 제작 기법과 등장 배경'에서는 기마인물형토기의 제작 방법을 단계별로 추적해 보고, 제작 기법과 형태적 특징을 근거로 제작 시기와 제작지, 등장 배경에 대해 검토하였다. 그 결과 5세기 전반 김해를 비롯한 낙동강 하구 지역과 함안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일본에서 출토된 가야 토기
   가야와 왜, 세토우치·동해로 교류

 
사다모리 히데오, 시가 현립대학 명예교수 : 4~5세기 동아시아와 가야의 토기에서는 일본열도에서 출토한 가야 토기를 통해 4~5세기 가야와 왜의 대외 관계를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가야와 왜의 대외 관계에서 주요 루트는 세토우치(瀨戶內) 루트와 동해 루트 두 개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 국제학술대회를 마치고 인사하는 주제 발표자 및 토론자들. 사진 제공=인제대 가야문화연구소


■4~5세기 가야 대외교섭
 백제와 왜, 모연선비로 넓혀져

 
백진재, 양산시청 학예연구사 : '4~5세기 전후 가야의 주변 정세-가야 여러 나라의 대외교섭과 광개토왕 남정을 중심으로 가야의 여러 나라와 주변 세력의 대외교섭 시기를 총 5기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가야 여러 나라의 대외교섭은 낙랑·대방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가 이후에는 모용선비(전연)·백제·왜를 중심으로 교섭하였다.


■기마인물형 토기 중장기병
 지휘자의 역할 보여주는 것

 
김혁중,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 : '기마 인물형 토기와 가야 중장기병의 실체'에서는 현재까지의 갑주 및 무기연구를 바탕으로 기마 인물형 토기를 분석하여 가야 중장기병의 실체를 추적하였다. 이를 통해 기마인물형토기에 표현된 중장기병은 지휘자의 상징적인 역할을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중·일 역사학자 13명 참가
 중장기병 토기 실체 추적
 왜, 기마 문화 도입 가야 영향

"기마 인물형 토기는 뿔잔"
"주거지 등 유적 검토 필요"
 학자 마다 열띤 주장 오고가




■무덤의 부장품 성격 분석
 당시 매장 의례 추정 자료 

 
장윤정,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4~5세기 가야의 마구와 무기'에서는 기존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무덤의 부장품 성격으로서의 마구와 무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4~5세기 무덤에서 출토한 마구의 종류, 마구 조합상의 변화 등을 통해 당시의 매장 의례를 추정하였다. 시기적인 변화와 함께 목곽묘와 석곽묘의 차이, 목곽묘 내에서도 조성 방식의 차이에 따라 유물의 조합과 부장위치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4~5세기 일본 대외교섭
 가야가 큰 역할 담당 추정

 
이사하야 나오토, 쿄토 부립대학 교수 : '4~5세기 일본과 가야의 마구'에서는 일본에서 마구의 부장이 시작된 고분 시대 중기의 모즈·후루이치 고분군에서 출토한 마구의 계보와 제작지에 대해 살펴보고, 이 시기에 기마문화를 도입한 왜의 대외교섭에서 가야의 위치에 대해 검토하였다. 지정학적 위치와 장식 마구의 형태로 보아 일본 기마 문화의 수용과 보급 및 정착에 가야사 큰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유목민 말안장 등 마구
 동아시아 지역별로 개선

 
첸링, 베이징대학 교수 : '3~6세기 중국 마구 및 마구를 통한 주변과의 교류'에서는 3~6세기 중국 및 한국의 등자와 안장(鞍裝)의 변화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유목민족의 이동과 교역을 통해 등자 및 안장을 비롯한 여러 마구가 동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지역별로 개선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주제 발표에 이어 이영식 인제대 가야문화연구소장 겸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종합 토론에서는 임학종 남가람 박물관장은 "'기마 인물형 토기'를 뿔잔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소개한 후 그 제작 주체를 신라로 보아야 한다”는 학계 일각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제시했다. 타케쓰에 준이치 후쿠오카 대학교수는 "죽은 사람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을 근거로 보통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사회 양상을 왜곡하지 않고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면서 "앞으로 많은 사람이 터를 잡고 살았던 주거지나 토기, 갑주, 마구 등을 생산한 유적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조윤재 고려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는 4~5세기 가야의 주변을 정세를 논할 때는 중국 공손정권과 왜로 이어지는 도식적인 관계보다는 동아시아 관계망을 차용한 설명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주헌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일부 기능성 토기가 일본 정치 중심지에 존재하는 것을 근거로 두 나라간 교섭 관계를 보여주는 확대 해석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