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골'이라는 책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생소할 것이다. 이 책은 김동화라는 정신과 의사이자 컬렉터가 자신이 소장한 작품을 통해 작가를 알게 되고 그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소장하는 일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호사라는 인식이 많지만, 김동화 박사는 일반적인 컬렉터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드로잉을 중심으로 작품을 소장해 왔다. 지금은 그 위상이 많이 변했지만 드로잉은 한국미술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다. '화골'의 의미 역시 '그림의 골조'가 되는 드로잉을 일컫는 다른 말이며 저자의 그림사랑을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단어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미술부를 통해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했으며, 20년 가까이 전시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화골'은 전문가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림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통찰, 그리고 따뜻한 열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나에게 그림을 소장하는 컬렉터들이 그림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공부와 사유가 동원되는지를 알게 해 준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미술이 투자의 도구가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지만 이 정신과 의사의 컬렉션 철학은 이 책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서화골동은 천하의 공물인지라 미술품에는 영원한 주인이 없다. (중략) 서화골동이 천하의 공물이듯이, 서화골동의 감상 역시 천하의 공관이어야 할 것이다."('화골'의 서문·김동화 )
 
컬렉션이라는 것이 당연히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행위지만, 저자는 자기 것에 대한 관심이 적다. 오히려 그림을 통해 철학하고 사유하는 즐거움을 세상과 나누기를 원한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화골'에는 300여 편의 도판이 등장한다. 이 모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전국의 화랑과 작가 작업실을 발로 오가면서 이 책은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 어느 전문가들도 따라갈 수 없는 놀라운 디테일을 담고 있으며, 현장에서 움직여 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들과 이야기가 가득하다. 가령 저자가 박수근의 드로잉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이나 작품을 구입하고 잠 못 이루는 대목에서는 그림사랑에 대한 마음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소장목록은 의외로 스펙트럼이 넓다. 한국근대미술의 핵심적인 작가에서부터 지역의 무명작가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도 아우르기 힘들 만큼 많은 작가에게 관심을 가져왔다. '화골'에는 이 모든 작가들과의 인연이 별처럼 새겨져 있다.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 중의 하나가 관객이다. 그림에는 당연히 관람객이나 소장가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면 이 작품은 수없이 많은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작품의 가치와 의미가 발생하게 된다. '화골'은 예술가의 정신의 산물인 작품이 어떻게 이해되고 소통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며, 이를 위해서 관객 역시 예술가 못지 않은 정신적인 활동이 필요함을 확인하게 해 준다. 그런 면에서 '화골'은 컬렉션은 '취향이자 동시에 철학'임을 나에게 일깨워준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 이영준은
1966년생으로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와영상매체협동과정 박사과정(미학)을 수료하였다. 조현화랑 큐레이터, 부산비엔날레 학술위원 및 현장감독, 대안공간 섬 설립 및 기획위원, 부산 MBC방송 '부산부산문화' 그림읽어주는 남자 프로그램 진행,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 심의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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