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좀, 등신대

양민주

쓰러진 관솔나무 둥치 톱으로 자르고 나이테를 열었다
점은 작은 원에서 큰 원으로 멀어져 있었다
껍질에 숨어있던 생의 크기는 그가 죽은 후에 드러났다
찐득한 눈물의 바깥 테두리만큼이 생의 크기였다
이제는 달이 부풀어도 세월은 그 위를 지나가지 않는다

현관문을 열면 마주 보이는 벽면에 남농의 소나무가 산다
벽은 메말라도 못을 잡아주는 손아귀의 힘이 세다
벼락을 맞아 부러진 소나무 가지 청룡언월도 같다
소나무는 늘 같은 키에 푸르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붉은 해를 품고 세월을 삼켜도 나무는 자라지 않았다

파과破瓜의 처자가 소나무 관속에 못 들고 땅속에 묻혔다
흙은 정갈한 아픔의 이유로 백골로 스며들 수 없었다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도 그 처자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육신은 썩어야 한다는 섭리를 잊고 긴 통증의 잠을 잤다
죽어서 말간 눈빛으로 솔터에 피어난 한 송이 솔꽃*

* 비사벌 순장소녀 송현이


<작가노트>

새로운 세상은 어디일까

창녕에서 온 순장 소녀 송현이를 국립 김해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다. 작은 체구에 맑은 눈, 일천오백년을 죽어서 백골로 산 소녀가 가여워 보였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왜 산 사람을 땅에 묻었을까?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믿어서일까? 그럼 지금의 세상이 새로운 세상일까?
 

·2006년 '시와 수필'을 통해 수필로,
·2015년 '문학청춘'을 통해 시로 등단
·시집 '아버지의 늪', 수필집 '아버지의 구두'
·원종린수필문학 작품상 수상
·현재 인제대학교 교무과장으로 재직 중.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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