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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다 떨어낸 '온산 낙엽'… 차라리 넉넉한 그 비움의 고즈넉함(8) 주촌 천곡 연지마을 소황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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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1.12.20 11:37
  • 호수 54
  • 12면
  •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소황새봉 오르는 오솔길은 그야말로 낙엽의 바다를 방불케 한다. 최산·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김해의 모든 산이 겨울잠을 자는 시기다. 산 속의 식구, 동식물들도 이듬의 절정을 위해 자리에 누웠다. 그들이 놀라 깨지 않도록 신행하듯 올라야 할 시기다. 그만큼 산을 오르는 이도 삼보일배(三步一拜)의 마음이어야 하겠다.
 
이번 산행은 주촌면 천곡리 연지마을을 품고 있는 소황새봉(276.0m)을 오른다. 오성기전 뒤 소황새봉 이정표를 들머리로 김해3터널 봉우리~소황새봉 능선~소황새봉~소황새봉 안부~도원사~연지마을을 날머리로 하는 능선코스다. 소황새봉 산행은 연지마을에서 소황새봉으로 오르는 원점회귀 코스를 주로 타는데, 이번에 오르는 반대편 능선이 경사도 높고 코스도 길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주촌면 원지리 김해3터널 대박교 밑, 오성기전 뒷담을 끼고 30여m쯤 가다 보면 왼편 산길 쪽으로 '황새봉'이라는 이정표가 쓰러져 있다. 이곳이 들머리다. 이정표 위로 말라붙은 칡덩굴이 얼기설기 휘감겨 있어 을씨년스럽다.
 
산을 오르면서부터 참나무 낙엽들이 버석버석 발에 밟힌다. 김해의 겨울산은 어디에서나 참나무 낙엽들이 지천이다. 한 톨 물기마저 메말라버린 낙엽의 속절없는 바스라짐. 그러하기에 겨울산은 하릴없이 적조하기만 하다. 그나마 양지바른 곳에 고사리 몇몇 아직 제 손 활짝 펴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고, 어디서 날아와 싹을 틔웠는지 호랑가시나무 어린잎이 고난의 겨울바람을 잘도 견뎌내고 있다.
 
   
▲ 쓰러진 채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는 참나무.

희미한 산길을 따라 가다 보니 묘지가 하나 보이고, 그 묘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계속 오른다. 솔가리와 참나무 낙엽이, 오르는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오르막이 잠시 쉰다 싶더니 산길이 오른쪽으로 휘돌아 간다. 낮은 산이지만 산등성이를 돌고 도는 깐이, 제법 사람고생 시키겠다는 생각이 언뜻 든다.
 
산을 오르며 사방을 둘러보니 온산이 낙엽이다. 낙엽의 바다. 철~썩, 처얼~썩, 걸을 때마다 파도치듯 낙엽물결이 일렁인다. 그 물결에 발목을 담그고 미끄러지듯 길을 헤쳐 나간다. 잠시 경사진 길이 치받더니 또 오른쪽으로 계속 길을 낸다. 산등성이를 한 바퀴 돌 모양이다.
 
곧이어 김해3터널이 지나는 봉우리 정상. 햇빛 받고 있는 운지버섯의 회백색 버섯 무늬가 선명하다. 그 앞에 연고자 잃은 묘지 하나. 이장공고를 못 읽었는지 쇠락해 있다. 묘비명조차 없이 '묘지번호 177번'으로 명명되고 있다. 세상사 사람 일들이 참 헛되고도 부질없어 보인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소황새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이 펼쳐진다. 길가 청미래덩굴 잎들이 늦은 단풍들어 빨갛고, 옻나무 가지들은 제 잎 떨어내고 매운바람을 견디고 있다. 가진 것 다 떨어낸 오솔길도 그 비움의 고즈넉함이 차라리 넉넉하다.
 
   
▲ 낙엽 쌓인 오솔길 한켠 부러진 나무둥치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

곧이어 내리막길. 오른쪽으로 살짝 보이는 김해2터널로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곧이어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오르막길과 오른쪽 길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오르막길로 방향을 잡는다.
 
산길은 일직선으로 계속 오르막이다. 봉우리 정상까지 계속 치고 오를 모양이다. 솔방울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고, 그 솔방울을 밟으니 '뽀드득' 마치 눈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난다. 칡 낙엽들도 떨어져 있고 오리나무의 빨간 낙엽들도 굴러다닌다.
 
가쁜 숨에 잠시 쉬자니, 주위 관목들이 모두다 진달래나무다. 소나무 밑으로 온통 그놈들뿐이다. 아차! 계절을 잘못 택했다. 봄날에 왔으면 이 산 전체가 붉은 구름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풍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아서라, 사람 일이 뜻대로만 된다면 또 무슨 재미가 있을 터인가?
 
갑자기 시야가 트인다. 묘지다. 능선 길 전체를 유택의 마당 삼아 잔디를 깔았다. 이곳에서부터 조망이 열리기 시작한다. 주촌의 공장들도 보이고 경운산, 그 뒤로 신어산도 살짝 보인다.
 
계속 오르막. 낙엽에 미끄러지며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른다. 나뭇가지가 가끔씩 뺨을 때리고, 같이 오르던 골바람은 그 뺨을 얼러댄다. 오르막이 더욱 급박해지자 이내 길은 갈지(之)자 새을(乙)자를 그리며 정상으로 치닫는다. 계속해서 낙엽은 푹푹 밟히고 숨은 목에까지 찬다. 정상이 가까워지는지 경사는 거의 40도를 육박하고, 발걸음은 두 발 오르고 한 발 미끄러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쓰러진 나무들 여럿 보인다.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란 소설제목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그 쓰러진 나무, 이웃한 나무 두 그루에 얹혀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그 고난의 무게를 견디는 자연의 거룩함. 산을 오르며 또 한 번, 사람 사는 도리를 산에게 배운다.
 
마지막 소황새봉 정상으로의 안간힘. 드디어 정상(276.0m)에 선다. 쇠딱따구리가 수고했다고 박수를 치듯 '딱딱' 나무를 쪼고 있다. 가쁜 숨을 다스리고 보니 정상 앞에 낮은 무덤 하나, 따뜻한 볕을 쬐며 안온하다. 누구의 유택인지 이곳에 눕는다고 꽤나 고생했겠다. 이 정상에 묘지를 쓰고자 한 효심도 보통 아니다.
 
   
▲ 억새밭에 숨겨진 소황새봉 정상석.

그런데 정상에 정상석이 보이질 않는다. 묘지 뒤 억새밭을 헤치고 나서야 바닥에 삼각점이 보이고, 그 앞에 '소황새봉' 정상석이 누워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정상의 조망도 주변 소나무와 억새밭에 둘러싸여 작약산 정상처럼 원활하지가 않다. 참나무 빈 가지 사이로 경원산과 신어산이 아스라이 보일 뿐이다. 정상을 앞두고 살짝 보이던 임호산, 함박산 능선도 짙은 나무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어쩌겠는가? 보이지 않으면 마음으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음이겠다.
 
하산은 올랐던 길을 버리고 도원사 방향으로 내린다. 미끄러운 하산 길이 조심스럽다. 숲에 둘러싸인 길은 인적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저 역광의 빈 나뭇가지들만, 그들의 삶을 명료하게 반추하고 있을 뿐이다.
 
한동안 내려가자니 죽은 소나무 몇 그루 서 있다. 자세히 보니 나무 밑동을 칡덩굴이 옭죄어 오르고 있다. 칡덩굴은 이미 소나무를 뒤덮고 있었는데, 그 기생의 칡이 소나무를 죽임에 이르게 한 것이다. 치명적인 이기심. 식물들에게도 이렇게 혹독한 약육강식의 방식이 있었음에 새삼 놀란다. 공생의 법칙이 깨어지면 자연은 이렇듯 가혹해진다.
 
   
▲ 소황새봉 들머리인 김해3터널 대박교 밑(위 사진)과 근처 오성전기 뒷담을 끼고 가다 보면 만나는 쓰러진 '황새봉' 이정표.
그러나 살고자 하는 생명력 앞에서는 자연도 한 발 물러나는 법이다. 제 몸 못 가누고 부러진 참나무 한 그루, 온 힘을 다해 부러진 밑동 쪽으로 나뭇가지를 틔웠다. 전신마비 환자처럼 드러누워 삶의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올 한 해, 연두색 찬란한 나뭇잎을 피우고 앙증맞은 도토리도 수확했을 것이다. 삶이 곤고한 자들이여, 산으로 가시라. 한갓 나무들도 제 생 다할 때까지 이렇게 제 삶에 충실하고자 함이다.
 
숲에 둘러싸인 길을 휘적휘적 여유롭게 내리다 보니 곧 이정표가 있는 쉼터. 도안사에서 올라가는 소황새봉의 안부 격이다. 벤치와 평상 하나 놓여 있다. 연지마을 쪽으로 하산한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가 크게 들리고 곤줄박이 소리 간혹 산의 정적을 깬다.
 
곧이어 말라버린 계곡이 길과 함께 나 있다. 물줄기는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계곡 위로 수북한 낙엽만 쌓였다. 계속해서 계곡을 끼고 산을 내린다. 도안사 이정표가 보일 때쯤 계곡에 물길도 흐르기 시작한다. 수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햇빛도 머금고 하늘도 담고 있다. 그 물에 잠시 얼굴을 씻는다. 그 차갑고도 청량함이 모든 세상근심 내려놓게 한다. 처처불심(處處佛心)이라 했던가? 이 물 속에도 부처 한 분 계시겠다.
 
금강송 한 그루 하늘 버티고 서 있는 곳 지나자, 날머리 입구인 도안사 지붕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피안의 세계와 속가의 세계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다. 그래, 오늘의 묵언수행은 여기까지! 연지마을 쪽에서 구수하게 밥 짓는 연기가 아스라하다.


Tip. 한적한 동리, 연지마을 겨울풍경


   
▲ 연지마을 풍경. 아직까지 공동우물이 남아 있어 아주 오래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소황새봉이 품고 있는 마을 천곡리 연지마을은 마을이름만큼이나 정겨운 자연마을이다. 청동기 시대 무덤인 대형 고인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가락국시대 이전부터 생겨난 아주 오래된 마을임을 알 수 있겠다. 아직까지 공동우물이 남아 있고, 이상대씨 집 대문의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낡은 입춘첩이 오히려 정감이 가는 마을이다.
 
집집마다 엄나무, 두릅나무, 감나무들이 식재돼 있어 풍요로움이 눈에 읽히고, 비자나무, 향나무들이 우물 앞에서 마을을 지키고 선 것을 보니 마을의 질서가 보인다. 고양이 한 마리 밭둑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설핏 졸고 있는데, 도원사에서부터 따라온 맹인안내견 '골든리트리버'는 온 동네를 제 목줄 물고 나그네를 졸래졸래 따른다.
 
도안사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첫 집. 별장인 듯 싶은데 화강암으로 세운 원앙솟대 두 개, 유별난 부부애가 눈에 선하다. 그 집을 지키는 진돗개 강아지 두 마리, 제 집 지붕에 올라들 앉아 바깥세상 구경하고 있다. 길손을 쳐다보더니 꼬리마저 살래살래 흔든다.
 
한옥과 양옥과 초가가 한마을에 공존하는 연지마을. 집 구조는 달라도 울타리마다 무시래기 몇 두름 턱하니 걸려 있고, 바람 좋은 처마에 메주 몇 덩이씩 조랑조랑 열렸다. 봄이 되면 소황새봉에 붉은 진달래꽃 예쁠 터이고, 큰 길 건너 이팝나무 하얗게 쌀밥꽃 튀기면 안 먹어도 배부를 터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리, 연지마을. 다음 봄에도, 그 다음 봄에도 '개발'이라는 광풍에서 비켜나 제발 무사했으면 좋겠다.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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