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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제철 기술' 전해준 이기섬 '가야인 마을'이영식 교수의 가야 찾아 일본 간다 ⑥
  • 수정 2019.05.08 09:16
  • 게재 2019.05.08 09:03
  • 호수 421
  • 10면
  •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report@gimhaenws.co.kr)







가야에서 왜로 가던 두 번째 징검다리
 국제 교역항으로 번성했던 하루노츠지 

 일본 열도 최초 '지상식 제철로' 발견
'가야의 신' 모시는 '카라카미 신사'도



■이키섬으로 건너가다
쓰시마 이즈하라항을 떠나 배로 2시간 정도 가면 이키섬의 아시베항에 도착합니다. 원래 '삼국지 위서 왜인전'은 쓰시마의 왜인들이 배를 타고 남북으로 '시적'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장사나 거래를 뜻하는 '시'에 쌀 사들일 '적' 입니다. 농사가 어려운 쓰시마 사람들이 남북으로 무역해 쌀을 사들이는 교역을 했다는 뜻입니다. 쓰시마의 북쪽은 우리 남해안의 가야 지역이 되겠지만, 남쪽은 이키섬과 큐슈가 됩니다.
이키는 쓰시마의 1/5 정도에 불과하지만 평지가 많아 쓰시마보다 농사가 활발한 곳입니다. '삼국지 위서 왜인전'도 쓰시마에는 좋은 밭이 없지만, 이키는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있다고 했습니다. 먹을 것이 나기 때문인지 넓은 쓰시마의 1천 여 호에 비해 좁은 이키의 인구가 3천 여 호나 된다고 했습니다. 이키섬의  특산물에 일본소주가 있는데, 하루노츠지유적에서 출토되는 표주박처럼 생긴 야요이토기의 도쿠리에 담아 팔고 있습니다. 술 담을 쌀과 보리가 난다는 얘기가 되는 거지요.

▲ 이키섬 아시베항 전경. 옛날 가야에서 왜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국제 무역항으로 발달했던 곳이다.

 ■국제무역항 하루노츠지
이키섬은 가야에서 왜로 건너가는 두 번째 징검다리로 이미 선사시대부터 국제교역이 활발했던 곳입니다. 그런 국제 교역항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하루노츠지 유적입니다. 1904~1905년의 첫 발견 이후 1951~1964년의 발굴조사를 거쳐 1974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가사키현 교육위원회가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습니다.
다중환호(해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선착장,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열도 각지에서 들어 온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위서 왜인전'이 기록한 일본 열도 내 30여 개의 국·읍 중에서 유일하게 구체적인 장소가 특정되었고, 그래서 이키국 왕도 라고 불리는 모양입니다.

▲ 최근 정비, 복원된 하루노츠지 유적지. 농경 문화가 발달한 흔적을 보여준다.

 ■이키국과 가야
가야계통의 유물을 볼 수 있었던 이전의 유적 전시관은 2009년 8월 30일에 폐관되고, 2010년 봄부터 새롭게 단장한 이키국 박물관이 오픈했습니다. 이 유적에서는 중국 계통의 화천·동경·삼익형 동촉과 한국 계통의 무문토기·돌대문 토기·도 질토기 등과 판상철부·철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키국 박물관에는 이런 유물들이 들어오고 나갔을 선착장(모형)에 통나무배에 판재를 덧대 올린 준구조선이 화려한 불빛 속에 떠 있습니다.
물론 중국과 한국 계통 유물의 존재는 고대 동아시아 항로로서 가야와 왜의 교역에서 중요한 고리 역할을 담당했음을 웅변해 줍니다. 나아가 중국의 삼익형 동촉과 한국의 세형동검과 철제 무기류 등은 단순 무역에 그치지 않고 유사시에는 가야의 군사적 파트너로 기능했던 사실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일본을 적대시하고 경계하는 풍조가 일반적입니다만, 가야제국은 교역은 물론 정치·군사적 파트너로서 왜국을 의식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광개토왕릉비'와 '일본서기'가 전하는 대로 4세기말~5세기 초에 경주의 신라성까지 함께 공략에 나서거나, 6세기 전반에는 왜국이 가야제국의 독립유지를 위해 지원하던 사실도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 2010년에 문을 연 이키국 박물관 전경.



■이키국의 가야계통 유물들
하루노츠지 유적에서 대량 출토되고 있는 흑요석은 한국 남해안의 신석기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과 통하는 것으로 시대는 다르지만 양자 모두 큐슈 북서부의 화산인 코시타케에서 생산된 것으로 양 지역 간 교류의 첫머리를 장식했던 유물입니다.
다음으로 한 계통의 무문토기와 돌대문토기는 청동기와 초기철기 시대에 진행되었던 가야 지역과의 교류를 보여주며, 화천과 오수전, 그리고 낙랑토기 등은 한군현~남부가야~일본열도를 연결하는 고대동아시아 해상교역로에서의 위치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가야의 화폐이자 철기를 만드는 원자재인 판상철부(는 금관가야의 양동고분군 등의 출토품과 동일 제품으로 보아 좋을 정도이고, 철부와 철겸 같은 철기들과 함께 가야식 동검은 가야지역과 깊은 관련이 인정되는 것들입니다.

 ■제철 기술의 가야인이 살던 마을, 카라카미유적
이렇게 고대 동아시아의 국제 무역항이었으며 이키국의 왕도였던 하루노츠지유적에서 서북쪽으로 약 6km 되는 곳에는 이런 교역과 생산에 종사했던 마을 유적이 있습니다. 가야를 뜻하는 카라의 카라카미(カラカミ)유적입니다. 너비 3.5m × 깊이 60㎝의 환호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집 자리와 조개무지, 그리고 무덤 등이 확인되었는데, 철검·도끼·가래·낫과 같은 다수의 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특별히 2013년에는 1~3세기경의 철 생산시설로 추정되는 지상식 제철로가 일본 열도 최초로 발견되었습니다. 일본 열도에서 이런 제철 기술의 전래와 시작이 '철의 왕국, 가야'를 내놓고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일 양국 학계의 정설이며 상식입니다.

▲ 이키섬 카라카미 유적을 발굴하던 모습.
▲ 경남 사천 늑도 유적지에서 발굴된 야요이 토기.

 
■가야인의 신사, 카라카미신사
더구나 유적의 중심부에는 지금도 카라카미 신사가 남아 있습니다. 카라는 외국 또는 외국제 물품을 뜻하는 것이고, 카미는 신을 뜻하는 것이니, 외래의 신을 모시거나 선진문물의 외국에 대한 동경이 신앙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으로 보는 것이 현지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는 남해안의 김해 부원동유적이나 사천 늑도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는 점치는 뼈, 곧 복골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복골과 토기 등에서 발견되는 고의적 파손의 흔적은 제사 의례의 결과로 생각되기 때문에 현존하는 카라카미 신사와 연결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특히 3세기말 경으로 보이는 굽다리접시(고배)는 태토와 적색산화철로 연마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그릇 모양은 김해 금관가야의 트레이드마크인 외절구연고배와 아주 흡사합니다.
여기에 중국계통 토기와 왜 계통의 야요이토기가 혼재하는 양상을 더하면, 가야인들이 중국 계통의 선진 문물을 가지고 이주해 와서, '카라카미' 곧 '가야의 신'을 신사에 모시면서, 토착의 왜인들과 어울려 살던 모습으로 그려 보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 고양이는 가야인의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여담입니다. 전에 카라카미유적에서 발견되었던 동물 뼈 중에 일본 최초의 집고양이뼈가 있다는 분석결과가 2011년에 발표되자, 고양이 좋아하는 일본열도가 조용하지만 강한 파문에 휩싸였습니다.
발표에서는 원래 일본열도에 없었던 종자가 외국에서 들어왔을 것이라 하였으니, 가야인이 살던 마을과 집에서 일본 최초의 집고양이가 길러지고 있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고양이의 사육이 가야인이 살던 마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흥미진진한 상상의 나래를 펴 봅니다. 하지만 이런 고고자료들이 뒷받침되고 있으니 가야사를 전공하는 한국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김해뉴스 이영식 인제대 인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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