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문인 27명 행적 집중 조명
 작품 통해 문학사적 '공과' 분석
"청산되지 않은 역사 짚고 가야"


 
이육사 시인이 독립과 광복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피 흘리며 싸우고 있을 때, 친일 문인들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동포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떠밀고 있었다. 그들의 '친일' 행적은 우리 민족사와 문학사의 오욕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친일은 과연 시대를 잘못 타고난 지식인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신간 '부역자들, 친일문학의 민낯'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친일 문인들은 개화기와 현대의 문학을 열었다는 공로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친일 부역을 했던 행적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추천사에서 "친일문학은 단순하게 학도병에 지원하라는 식의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발성으로 끌어내는 확고한 이데올로기 구조를 갖췄으며,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계속하여 이식·번식하고 증가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이 같은 기본 인식 아래 27명의 친일 문인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그들의 친일 행적을 그들이 신문 지면 등에 발표한 글이나 작품을 통해 실증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다양한 장르의 문인들이 어떻게 친일 부역의 길을 걸어갔는지 그들의 생애와 작품을 연결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해방 이후 여전히 주류로 활동했던 이들의 행적까지 추적함으로써 전 생애에 걸친 그들의 문학사적 공과를 온전히 그려내고자 했다. 국내에 세워져 있는 친일 문인들의 동상과 기념관을 직접 답사, 청산되지 않은 굴절된 역사의 현주소를 보여주기도 한다.
 
책의 갈피를 따라 그들의 행적을 살펴보자. 춘원 이광수는 그의 문학을 친일의 제단에 바친 인물로 그려진다. '나는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신념을 가진다. 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 버려야 한다고.'('심적 신체제와 조선 문화의 진로', <매일신보> 1940년 9월 4~12일 자)
 
프롤레타리아 계급문학의 전사 김기진은 황민문학으로 투항한 시인이자 평론가로 지목받는다. '이 산과 이 냇가에 우리는 이웃사촌/ 삼천리 한집이요 내선(內鮮)이 일가어늘/ 어찌나 이 큰 전쟁이 내 싸움이 아닐까.'('경산시첩 1', <매일신보> 1944년 10월 4일 자)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대동아전쟁'을 찬양하고 징병·학병을 선동했던 팔봉 김기진은 광복 후 '인민재판'에 회부되었으나 극적으로 생환한 후 종군작가단에 입대해 무공훈장까지 받는다. 저자는 "이 한 편의 일화 속에는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우리 역사의 단면이 어른거리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사슴'의 시인 노천명은 여성 화자를 앞세운 친일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와 '출정하는 동생에게'를 통해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전쟁터로 나갈 것을 선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쟁에 나감이 소원이라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더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매일신보> 1943년 8월 5일 자) 저자는 시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 제정과 시상에 대해 "친일 부역은 감춘 채 나머지 성취만을 선택적으로 비추고 있다"며 굴절된 역사에 대해 지적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 '장미촌'(1921)을 펴냈고, 문예 동인지 '백조' 창간(1922)에도 관여했던 회월 박영희는 친일 국책영화 '지원병'(1941)의 대본 원안을 쓴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니라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의 시인 주요한은, 젊은 여성은 간호부로 청년은 가미카제로 전쟁에 참여하라고 독려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50~60년대 민의원과 장관 등을 역임하며, 많은 친일 문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 사회의 주류로 살아간 행적이 남아 있다. 심지어 70년대 들어서는 도산 안창호와 안중근 의사 등의 기념사업에도 관여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데, 이 또한 식민지 역사에 대한 청산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풍자 소설가 채만식은 1930년대 식민지 시대의 어둡고 뒤틀린 현실을 고발하고 풍자한 장편소설 '탁류'의 문학적 저력에도 불구하고, 1940년대 '조선 사람은 닛본징(日本人)이 되어야 한다'(장편소설 '아름다운 새벽', <매일신보> 1942년 2월 19일 자)고 선동한 친일의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친일 문인으로 이름을 올린 시인, 작가들을 제외하고 현대 문학을 온전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문학의 한계이면서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하는 해묵은 과제이기도 하다"며 기억 투쟁을 통해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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