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자들의 사상 해석·비판
오역·비문 바로잡고 판형 바꿔

 

서양 철학사의 정전(正典)으로 인정받는 '러셀 서양철학사'. 이 책의 번역본이 1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역자는 1년 동안 오역이나 비문을 바로 잡고, 예스러운 문장을 가다듬었다. 거의 재번역 수준이다. 출판사도 판형과 제본을 바꾸고, 60여 점의 관련 도판과 전문학자의 해설을 곁들였다.

버트런드 러셀은 철학자, 수학자, 사회운동가, 교육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20세기의 대표적 지성.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현대철학까지 서양철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철학자들의 사상을 그의 관점에서 써나간 철학사의 고전이다.

러셀은 2500년간 서양철학에서 나타난 주제를 하나하나 찾아낸다. 그는 철학이 해당 시대의 사회문화나 정치적 환경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는지 보여준다. 철학이 종교, 수학, 과학 같은 다른 분야와 연결되는 부분을 논의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이 다른 철학 서적과 사뭇 다른 건 러셀이 철학자들을 해석하는 동시에 비판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철학적 관점과 참신한 분석적 방법으로 메스를 들이대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철학자라도 단순히 숭배하지 않겠다는 기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모른다고 시인하는 자세도 잊지 않는다. 철학의 대가인 러셀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저술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이 책은 그가 1950년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 선정 이유로 인용될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철학사를 쓰고 있는지 논쟁의 역사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서평에서부터, 고대와 중세 철학에 대한 논의는 무가치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많은 철학자에 대해 부적절하고 오해로 가득한 이해를 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있었다.

러셀은 '자서전'을 통해 이렇게 응답한다. "내 생각에 편견 없는 사람이 정말 있더라도, 그런 사람은 흥미로운 철학사를 쓸 수 없다"고. 그는 이런 인정을 통해 지적 탐구 자세를 잊지 않는다. 사물을 새롭게 보는 이는 비판을 늘 각오해야 하는 모양이다.
 
부산일보=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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