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경제 용어들 중에서 투자와 투기만큼 경계가 모호하고 애매한 것도 흔치 않다. 국어사전에서 투자란 '이익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이고 투기란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이라고 되어 있다.

경제학에서 투자란 기계설비, 공장건설 등의 설비투자뿐 아니라 주식, 채권, 부동산 등 광범위한 자본형성 과정을 포함한다. 반면 투기란 단기 이익을 목적으로 불확실성을 이용해 적극적 모험행위를 하며 일시적인 차익을 노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속된 표현으로 보다 간편하게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꾼'이라는 글자를 덧붙여 자연스럽지 못하면(투자꾼) 투자이고, 자연스러우면(투기꾼) 투기이다. 일반적으로 투자는 정상적·합리적 행위로, 투기는 탈법·불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투기가 경제학에서 반드시 불법적이고 나쁜 것도 아니다.

달러를 사고파는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판단하는 투기자와 거꾸로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투기세력들이 서로 다투면서 균형적인 달러 가격이 정해진다. 뿐만 아니라 주가지수, 석유, 금, 채권 등 선물시장에서는 미래 시세를 서로 달리 예측하는 투기자들이 없다면 시장은 개점휴업 상태가 될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꽃이라는 금융시장에서 투기세력은 필수적이며 고마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손가락의 약지(넷째)와 검지(둘째) 의 길이는 성격과 재물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많은 연구가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은 잘 나가는 증권 트레이드를 대상으로 수익률을 조사했는데 흥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약지의 길이가 긴 사람은 짧은 사람에 비해 여섯 배나 돈을 잘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검지가 짧고 약지가 긴 사람은 지배욕과 공격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태아 때 약지의 길이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검지의 길이는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투자자와 투기자 간의 손가락 길이 차이는 어떠할까. 물론 아직까지 이에 대한 연구는 없지만 투자자 보다 투기자의 약지가 검지에 비해 더 길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는 있겠다.

최근 입장이 뒤바뀐 우리 정치권 환경은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더 한층 혼란스럽게 했다. 여당은 야당 시절 날카롭던 투기의 창이 무딘 투자의 방패로 변했고 야당은 반대로 투자라고 우겼던 방패를 던지고 여당을 향해 예리한 투기의 창을 겨눈다.

문화체육관광위원이었던 국회의원이 일제 강점기 적산 가옥을 직권 남용으로 여러 채 사들였다는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본인은 문화재 부동산을 매입해 박물관을 짓고 국가에 100% 기부하려고 말해왔다며 항변한다. 청와대 대변인 시절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재개발 예정지에 10억 원의 은행대출을 받아 25억 상가건물을 매입했다는 논란이 일자 자진 사퇴했다. 그는 30년 무주택에 노모 모시고 퇴직 후에 임대소득 받으며 살고 싶어 교사 아내가 연금 대신 퇴직금을 받아가며 마련한 것이 왜 죄악시 되느냐고 억울해 한다.

헌법재판관 후보자 검증 청문회에서 여성 재판관은 남편의 판사 재직 시절 수십억 원의 주식 투자 논란에 휘말렸다. 공익과 부딪치는 사적 이익을 위해 결코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이익충돌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부동산 투기 보다 건전한 자본시장의 주식 투자를 한 것이 오히려 떳떳하다며 청문 위원과 맞장 TV토론까지 제안 했다.

투자와 투기를 구별하는 데는 우리 사회에 높은 눈높이 도덕성의 국민정서법이 존재한다.  어쩌면 그 위에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 상위법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내가하면 투자이고 남이하면 투기라는 '내로남불'은 이미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사자성어가 된지 오래이다.
김해뉴스 강한균 인제대학교 명예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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