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중심으로 쓴 20세기 미술사
'이즘'의 등장·전파 구체적으로 추적
다양한 사조와 작가·시대상 풀어내



야수주의, 입체주의, 표현주의, 앵포르멜…. 현대미술이 등장한 20세기를 '이즘'(ism)의 시대라고들 얘기한다. 이즘(주의)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을 보는 '시대의 눈'은 사회의 변동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격변의 20세기에는 이즘의 변화도 많았다.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은 20세기 미술사를 전시를 중심으로 다룬다. 20세기의 다양한 이즘들을 미술사에 등장시킨 사건으로서의 전시를 중심으로, 전시를 이끈 사람들인 작가와 비평가와 아트딜러 사이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미술의 역사, 특히 전시는 추상적이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시는 실제의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특정 사건이었기에 그 시대와 사회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미술책이 사조나 인물을 중심으로 미술사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전시 특히 '첫 전시'를 중심으로 그 배후에서 미술사를 움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이즘의 탄생과 전파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말하자면, 잘 알려진 표면적인 미술사가 아니라 20세기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을 품은 전시들의 역사와 맥락을 짚어낸 것이다.

이즘의 이름들은 왜 그렇게 지어졌고,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 또 그 배후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런 물음들을 화두로 이 책은 20세기 초,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를 시작으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작가들이 어떻게 이즘을 만들고 그들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물음들이다. 어떤 전시가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마련되었는가, 그들의 새로운 작품들이 어느 현장에서 어떤 방식과 누구의 도움으로 알려지게 되었는가, 가장 관심을 받고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품은 무엇이었나, 그 시기의 반응과 비평은 어떠했는가?

이 책은 20세기 모던아트를 열었던 야수주의와 입체주의를 선두로 표현주의, 다다, 초현실주의와 20세기 전반의 주요 흐름인 추상미술을 다룬다. 추상은 데 스테일, 바우하우스, 아모리쇼, 앵포르멜, 뉴욕 스쿨의 추상표현주의로 나눠 살펴본다. 또 이와 같은 모더니즘의 흐름에 저항하는 포스트 모던의 움직임으로 팝아트와 누보 레알리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 대해서도 들여다 본다.

야수주의는 사조의 이름 자체를 전시에서 얻었다. 1905년의 제3회 '살롱 도톤'에서 그들의 작품을 처음 본 평론가들이 "야수들"이라고 평가한 데서 유래했다. 마티스, 블라맹크, 드랭 등의 회화는 정말 야수처럼 강렬하고 공격적인 색채와 파격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특히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이 큰 화제가 됐다.

다다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스위스에서 시작됐는데, 당시의 암울한 사회상을 반영해 기존 체제와 전통적 미학을 반대했다. 다다의 스타는 단연 뒤샹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살롱 큐비스트로 활동하던 뒤샹은 1915년 뉴욕으로 건너온 후부터 회화를 접고 레디메이드 작품에 집중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그 유명한 '샘'이다.

뒤샹은 이 작품을 1917년 뉴욕에서 열린 '앙데팡당'에 제출했다. 작품을 본 집행부가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전시의 규칙상 반려하지 못하고 칸막이벽 뒤에 숨겨놓았다. 이를 안 뒤샹이 작품을 찾아 보란 듯이 들고나왔고, 이후 이 작품은 스티글리츠의 촬영으로 잡지에 실리게 됨으로써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유럽에 앵포르멜이 있었다면 미국에는 뉴욕 스쿨이 이끈 추상표현주의가 있었다. 뉴욕 스쿨의 작가들은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한 폴록과 색면회화로 유명한 로스코, 뉴먼, 스틸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폴록은 캔버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는 뒤샹이 소변기를 전시품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 간단한 행위(선택)로 상식을 뒤흔들었던 것만큼이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젤을 벗어난 캔버스는 미술 작품의 축을 수직에서 수평으로 전환하고, 캔버스에 뿌려진 물감은 형태가 아니라 작가의 움직임, 즉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유럽 미술의 전통을 일거에 깨뜨렸다.

팝아트의 거장 워홀은 상업미술과 순수미술 사이의 경계에 있다. 1960년대 전반 재난과 죽음을 다룬 그의 연작은 어둡고 무거운 리얼리즘을 느끼게 하면서도 극적인 개인사와 신비로운 분위기, 패션 등 포스트모던적인 수사로 허상적인 이미지의 시대를 예견했다.

저자는 "이 모든 이즘이 그들의 첫 전시를 통해 등장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서 "이 책을 통해 예술가와 미술사가 그리고 아트딜러들이 성공에 이르는 과정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실패와 실수도 함께 드러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