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승수 인제대학교 미디어센터 간사

김해시는 낙후된 곳이 아니라 보존된 곳이다.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진 도농복합도시', '공원이 아름다운 곳', '이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가야왕도'는 삶의 터가 잘 보존된 김해를 수식하는 말이다. 그런데 낙후됐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무분별하게 들어선 개별공장들로 인한 난개발', '지역을 살리려는 취지로 진행 중인 도시재생사업'은 지금껏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보존이냐 낙후냐'하는 이분법적 설명을 꺼낸 이유는 서두에 말한 의도적인 명제를 부각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더욱 잘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어서다.

김해시는 지난해 국내 14번째로 국제슬로시티에 가입했다.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의 도시 오르비에토에서 시작됐다. 성장보다는 성숙을, 양보다는 질을, 속도보다는 깊이와 넓이를 삶의 수식으로 삼고자하는 국제운동이다.

김해의 핵심콘텐츠는 봉하마을과 화포생태습지공원이다. 한때 화포천은 상류의 공장으로 인해 수질오염이 심각했고, 빗물에 떠내려온 쓰레기가 마을에 넘쳐났다고 한다.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땅으로 거듭났다.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주민들 덕분에 자연과 함께 천천히 걷는 길이 완성된 것이다. 비록 도심에서 벗어나있고 주민도 많이 없지만 낙후된 곳이 아니라 보존된 곳이다. 오히려 이런 외곽 지대의 자연과 상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철학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여 친환경적으로 근대화해나가는 방향이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슬로시티가입 이후 김해시의 정체성이 한층 뚜렷해진 것 같다. 동김해IC로 들어와보면 입간판으로 세워진 '슬로시티 김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도심이든 외곽이든 시민들의 삶을 조화롭고 균형있게 성장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김해시는 '김해 슬로라이프 4.0'이라는 비전을 선포했고 앞으로 5개년 기본계획에 따라 갖가지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2018, 2019년은 기반 조성기, 2020~2022년은 성공 체험기로 구분된다.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분명 '슬로시티' 관련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5년은 너무 짧은 계획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분명 방향을 설정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2020~2022년도에 성공을 체험하기에는 이르지 않은가. 올해는 2019년이고, 방향을 세세하게 잡는데만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 보는데 당장 내년부터 '성공 체험기'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단기적 성과를 내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하루빨리 주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매우 고맙지만 섣불리 진행하다가는 도리어 '불통'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지역특색이 무엇인지 우선 파악하고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한다. 이왕이면 정책입안자들이나 사업관련자들은 주민, 혹은 주민의 삶에 파고들 줄 아는 사람들로 구성하길 바란다. 환경파괴나 원주민 소외가 인류 진보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슬로시티를 지혜롭게 건설해가길 기대한다.

만일 입안자들이 기대했던 만큼 사업이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천개의 나이테가 하루아침에 그려질리 없다. 방향성만 갖추고 천천히 가더라도 이해할 것이다. 오히려 정책과 사업 진행이 '가속화'될 때 슬로시티가 갖는 의미가 환기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가야왕도 이천년의 역사를 어떻게 더 나은 방식으로 보존하고, 어떻게 건강한 도시를 만들어갈지가 관건이다. 과거의 이천년보다 앞으로의 이천년이 중요하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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