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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윤숙 시인과 한국전쟁특별기고
  • 수정 2019.05.29 11:33
  • 게재 2019.05.29 11:29
  • 호수 424
  • 11면
  • 하성자 시의원(report@gimhaenews.co.kr)
▲ 하성자 시의원

시인 모윤숙은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수재이다.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우리 역사의 자락에서 '렌의 애가'를 비롯한 숱한 작품을 탐닉하였던 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내가 흠모했던 모윤숙은 대단한 위상이었다. 시인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6.25 전쟁 당시 경기도 광주 산곡의 피난길에서 보았던 어느 국군의 사체를 보고 쓴 피눈물 나는 서정이 담긴 작품이다.

한 나라나 어느 정부나, 개인이나 그 역사는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친일 작가로 분류된 모윤숙 시인은 살아생전에 명예와 권위를 실추한 채 가고 말았다. 자신이 지닌 최대의 자산, 힘차고 섬세했던 필력을 친일에 사용한 증거는 남아 그 과의 대가로 이름을 먹칠하고 손상했다. 그런 한편으로 친일 행적에 버금가는 모윤숙의 업적이 있으니 바로 6.25 당시 시인이 수행했던 탁월한 외교 행적이라 할 수 있다.

"모윤숙은 기자와 시인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하며 1948년 이승만 박사를 만났다. 그는 이 박사를 도와 국내에 1948년 1월에 서울로 들어온 유엔한국위원단에게 한국의 건국의지를 알리고 정확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메논 단장을 전담했다. (중략)

유엔은 조선위원단(또는 한국위원단)을 대한민국 건국을 돕고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1948년 1월 국외국가의 대표 60여명을 서울에 파견한다. 당시 유엔한국위원단 단장을 맡은 메논은 한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인적 교류를 펼쳤고 문학적 식견이 높았던 메논은 모윤숙 시인과 가까워졌다. 이승만 박사를 돕던  모윤숙은 정치적인 주제를 통하지 않고 문화적 접근을 통해 외교적 역량을 펼쳤다."(뉴데일리 윤희성 기자 제14회 이승만포럼 '이승만과 메논, 그리고 모윤숙' <이승만포럼> 모윤숙 시인과 '낙랑클럽'의 재발견/ 최종고 서울대 법대 교수)

6.25 당시 모윤숙 시인의 외교적 역할이 실로 대단했다는 말을 해 준 이는 포스텍 명예교수이자 한국문인협회 고문인 김원중 박사이다. 김원중 박사는 모윤숙 시인의 친일 행적을 안타까워하며 6.25 당시 유엔군 파견을 위해 물밑 외교력을 발휘했던 모윤숙 시인의 활동에 대해 그 공로는 친일이란 과에 상응할 만큼이나 지대한 역할이었으며 그 사실이 간과되어 매우 아쉽다는 말을 했다.

모윤숙 시인은 척박하던 시절에 영어에 능통하며 교양과 지식을 갖춘 소위 보기 드문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런 여성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데다 더구나 여성의 유교적 소양이 중요시되던 때인지라 나라가 위험한 지경임에도 선뜻 발 벗고 외교 전선에 나서 줄 사람 찾기가 어렵던 상황이었다. 그럴 때 그 일에 앞장섰던 모윤숙은 대단한 결단력을 지닌 굉장한 능력자였다고 본다. 모윤숙의 외교적 역할이 6.25 전쟁 승기를 이끌어내는데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 역사가 그냥 생긴 것이라고 보는가?"

증언의 감동스러움도, 변절시인의 낙인도 역사의 교차점에서 익숙하지 못하다. 역사 속에서 시대의 희생자들, 국운이 간당거리면 힘없는 나라의 백성은 이리저리 쓸리게 되며, 사회적 배경을 지닌 이들은 협박과 회유의 늪에 빠져 배반 아닌 배반을 할 가능성이 높다. 임진왜란 중에 왜의 첩자가 된 이들도 무수했음을 징비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시대를 산다, 우리는 어떤 역사로써 변명하고 두둔할 것인가?

저항시인의 고뇌와 고통이 위대해 지는 순간 모윤숙 시인의 친일 행적은 두드러지고, 그 뒤안길이 저미며 왠지 씁쓸하다. 또 울컥해지는 이 6월을 극복하고 싶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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