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혜정 시조작가

며칠 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 칼리지(Morehouse College)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던 미국의 비스타 에퀴티 파트너스의 최고경영자 로버트 프레드릭 스미스가 그 학교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연설문에는 없던 내용을 즉석에서 발표한 것이다, 이 소식은 외신을 타고 빠르게 전해져 전 세계인의 화제가 되었다.

CNN 등 외신들은 "억만장자가 졸업생에게 깜짝 선물을 건넸다"고 하면서 학생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환호성을 질렀으며 부모들은 서로 부둥켜안았다고 전했다.

그의 이번 행동이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졸업을 하고 나면 취업이 금방 되는 것도 아니고 설령 취업이 된다 하더라도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5년에서 10년 이상 그 빚을 나누어 갚아야하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의 고리를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학자금 빚에서 헤어날 때쯤 결혼 시기가 다가올 것이고 그 시기가 되면 또 결혼 자금이다 주택 자금이다 해서 이번에는 주택 관련 융자를 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평생 빚에 쫓기며 산다고 보도했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빚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고 보도되고 있다.

화제가 되고 있는 학자금 대출이란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로, 학부생(만 35세 이하)에게 학자금(등록금 및 생활비)을 대출해주고, 취업 등 소득이 발생한 시점부터 소득수준에 따라 원리금을 상환하는 제도를 말한다. 대학 생활 동안 등록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돈이 없어도 대학을 진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요즘과 같이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는 소득이 없어 대출금이 계속 연체돼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오자마자 신용불량자를 뜻하는 신용유의자가 되기도 한다. 또, 생활비 부담을 이기지 못한 청년들이 카드빚을 내어 카드돌려 막기를 하다가 인생을 파탄내기도 한다. 특히 학자금 대출은 소득이 낮은 가정의 자녀가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취직이 되고 돈을 벌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해서 빚이 쌓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 시절 내내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졸업 즉시 취업하여 돈을 벌었지만,  당장에 식구들 입에 풀칠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들 학비를 대느라 내 대학 학자금을 갚을 여유가 없었다. 월급을 꼬박꼬박 어머니께 갖다 드렸지만 어머니는 은행에 나의 학자금을 갚지 못했고 나는 직장에서 몇 년 동안 채무를 독촉하는 은행고지서를 받았다.

어찌어찌 그 뒤 몇 년에 걸쳐 겨우 학자금을 갚고 결혼자금은 다시 빚을 내고서 나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5년 정도 월급의 절반을 빚을 갚는데 썼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시절은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두가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라 대학을 간 것만도 감지덕지 하면서 여행이니 휴가니 선행이니 이런 말은 꿈도 못 꾸고 살았다.

이제 내 나이가 들어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갔다. 결혼하고 10년이 훨씬 넘어서야 겨우 아파트 하나를 장만할 수 있었는데 아파트 대출 받은 것 이자 갚으면서 아이들 공부시키느라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해서 생활고나 빚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열심히 사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 학자금 대출은 부모인 내가 갚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결혼자금도 마련해야 하고 집도 마련해야하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연설을 이어가면서 "우리 사회와 마을이 함께 키운 여러분이 자신의 부와 성공, 재능을 환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서 "여러분의 버스에 연료를 조금 넣어 주는 대신 여러분 또한 선행을 계속 이어 갈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버스에 연료는 누가 넣어줄 것이며 아이들은 과연 사회에 부와 성공, 재능을 환원하고 선행을 베풀 수 있을 것인가 깊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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