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겨울에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타고 한 달 가까이 시베리아 지역을 취재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모스크바-예카테린부르크-노보시비르스크-이르쿠츠크-치타-하바로프스크로 이어지는 수천 km의 여정이었습니다.

시베리아라고 하면, 조금 서정적인 사람들은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하얀 눈과 하얀 자작나무를 떠올리겠지요. 눈과 자작나무, 정말이지 신물 나도록 봤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철로 변 가로수들은 다 자작나무였습니다.

자작나무 말고도 시베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많은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영하 37도의 추위도 겪어 봤고, 머리 꼭대기에 별을 달고 있어서 웬걸 동화 속의 궁전 같았던 크렘린궁도 구경했고, 아르바트 거리도 거닐어 봤습니다. 이르쿠츠크에서는 바이칼호로 가서 물수제비를 뜨기도 했습니다. 바이칼호는 크기가 한반도의 1/7이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바다나 다름 없더군요. 저와 안내를 맡았던 이르쿠츠크 철도청 직원은 준비해 온 보드카와 구운 오물(바이칼호에서 나는 생선 이름입니다.)을 펼쳐 놓고 '떠바이(건배)'를 했습니다. 그래야 다시 바이칼호에 올 수 있다더군요.

열차 안의 시베리아 사람들은 '까레이스키 자날리스트(한국인 기자)'가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포병장교, 벌목꾼, 소규모 무역상, 소방관, 껄렁패 등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기자가 타고 있던 4인용 침대칸에 들어와 손짓발짓을 해 가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보드카와 맥주를 나눠 마셨습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방문이 잠기지 않던 호텔방, 호텔에서 막 나서는데 폭탄이 설치돼 있다며 군경이 들이닥친 외국인 전용 호텔, 여행자 수표를 제시하면 오히려 수수료를 받던 은행들…. 추위 속에서 참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기 힘든 불쾌한 기억이 '까레이스키 비즈니스맨(한국인 사업가)'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러시아에서 '까레이스키 비즈니스맨'은 '사기꾼'과 동의어였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한국에서 온 자칭 사업가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재산을 날린 러시아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한 고려인 사업가는 기자를 만났을 때, '사기꾼' 아닌가 하며 경계를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억울한 건, 영문도 모른 채 사람들의 차가운 경멸의 시선을 받아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하바로프스크의 한 식당에서는 단지 까레이스키라는 이유로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한 교환학생으로부터는 버스 안에서 얼굴에 침 세례를 받았다는 말도 전해들었습니다. 그게 다 '나쁜 한국인'들 때문에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이런 기억이 떠오른 이유는 <김해뉴스> 지난호 커버스토리 때문이었습니다.

<김해뉴스>는 커버스토리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인권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찾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차갑고 더러운 컨테이너 집'에 대해 안타까워했습니다. 베트남계 노동자 6명이 강동에서 발생한 비닐하우스 화재 현장 바로 옆의 컨테이너에서 생활해 왔고, 잠을 자고 있었다면 인명피해가 날 뻔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연실색해 했습니다.

어떤 분은, 지엽적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우려를 하셨습니다. 한국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 이주노동자들이나 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인 여행객이나 체류자들을 불쾌하게 대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유쾌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유쾌하게 대하고, 한국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불쾌하게 대하는 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우리 자식들의 편안한 배낭여행을 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들의 주거인권 실태에 대해 김해시와 김해시의회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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