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오늘의 수필
헌책오늘의 수필
  • 수정 2019.06.19 10:40
  • 게재 2019.06.19 10:36
  • 호수 427
  • 11면
  • 성혜경 김해수필 사무국장(report@gimhaenews.co.kr)
▲ 성혜경 김해수필 사무국장

밤비가 타닥타닥 내리더니 하늘이 말갛게 아침을 열었다. 손을 뻗어 그저께 받아 놓은 책을 끌어당겼다. 한 시간여 글을 쫓아가던 시력이 기운을 잃는다. 애면 안경 렌즈를 꼼꼼히 닦지만 소용없다. 비 내린 후의 하늘빛이 아까워 그랬던가. 종일 책과 씨름을 했다.

나만의 넉넉한 시간은 눈이 나빠져서야 찾아왔다. 시력이 좋았을 때는 잠은 왜 그리 많았는지 아이들에게 동화책 몇 권 읽어 주다가도 금세 자몽했다. 글을 빨리 읽는 편이지만 기억력이 나빠져서인지 앞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그래도 책을 읽는 시간에는 만사를 잊어서 좋다.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더 좋다.

나는 책을 대부분 사서 본다. 도서관에서 빌릴라치면 담당자로부터 도서반납 하라는 문자를 받아야 한다. 반납하거나 재대여 하는 절차가 부담스럽다. 새 책을 사려니 비용문제도 만만치 않고 책 반납에 대한 내 기억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러니 헌책방을 서성이게 된다. 신간이 궁금할 때는 서점도 들리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구매하며 가격을 비교하며 살 수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몇 년 전부터는 중고 책 사이트에서 딜러로 활동한다. 소장하고 싶은 책 이외에는 적당한 가격으로 팔아서 필요한 책을 구한다. 주문받으면 헌책이라도 정성을 다해서 보낸다. 책을 포장지로 몇 겹 싸거나 뽁뽁이로 감싸는 마지막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헌책을 받으면 보낸 이의 됨됨이도 동봉된다. 시가 적힌 엽서를 책갈피에 꽂은 이가 있는가 하면 티백 하나를 넣어 보내는 곰살맞은 사람도 있다. 헌책을 사고팔다 보면 서로 행복 배달꾼이 된다. 책 포장지를 열자마자 파스 냄새가 진동한 적도 있었다. 얼마나 파스를 많이 사용하여 책에 베여 있단 말인가. 책 주인이 고단한 노동자이거나 관절염에 시달리는 노인임을 짐작해본다. 책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베인 헌책에는 인생의 묵은 냄새가 난다.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을 얻은 기분이다.

헌책에는 읽은 이의 마음 부록이 들어있다. 전 주인의 독서습관도 알아채게 된다. 책장을 넘기다가도 밑줄 친 부분에 다다르면 기억하려는 독자의 의지가 드러난다. 손때가 골고루 묻어있는 헌책을 보면 완독을 짐작하게 된다. 헌책을 사고파는 독자들은 지식에 대한 간절한 마음도 공유한다.

햇살이 좋고 적당한 바람이 분다. 헌책 말리기 딱 좋은 날이다. 읽던 책을 덮고 묵은 책을 꺼내와야겠다. 가슴 가득 안아 온 책을 베란다에 부려놓고 일일이 브이 자로 벌려가며 세운다. 햇살과 바람이 책갈피 속으로 스며든다. 책을 말리다 말고 밖을 내다보니 유월이 솔랑송랑 지나가고 있다.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성혜경 김해수필 사무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재미로 보는 주간 운세 2019년 10월 셋째 주재미로 보는 주간 운세 2019년 10월 셋째 주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비밀글로 설정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