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림면에 위치한 한 공장. 산을 깎은 자리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다.

불과 7~8년 만에 동네 야산 쥐파먹은 듯, 기반시설 취약·환경오염 등 부작용 심각

14번 국도를 따라 김해시 진영읍에서 한림면 방면으로 한참을 달리다 보면 아늑하고 야트막한 야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넓은 들판을 등지고 있고, 남쪽으로는 기름진 밭들이 펼쳐져 눈이 시원하다. 한림면 퇴래리의 풍경이다. 조선 전기 단종 3년에 유학자 서강 김계금이 아늑하고 조용한 마을 전경에 반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살던 곳이다.
 
그러나 퇴래리의 고요함은 옛날 이야기가 돼 버렸다. 동네로 들어서기 전부터 기계의 굉음이 들린다. 희뿌연 매연도 쉼없이 나온다. 어느모로 보나 공업 도시 한 가운데서 벌어질 일이 벌어지고 있다.
 

25도 경사 조례 적용 7년여간
산·임야에 6312개 업체 들어서
경남 전체 공장 수의 35%수준

한적했던 시골 마을은 여기저기 난립한 공장들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렸다. 밭에는 농작물을 대신해 공장들이 난립해 있고, 사람 사는 집과 기계들이 뒤엉켜 있다. 마을의 중심을 잡아주던 야산에는 파란지붕, 오렌지색 지붕의 공장들이 쥐 파먹은 자리같은 흉측한 모양새로 들어앉아 있다.
 
퇴래리에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지 불과 7~8년만에 마을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부터 개발업자들이 헐값에 야산을 사들였고, 길도 없는 곳에 공장을 지었다. 시골 길을 따라 공장은 우후죽순 들어섰고, 사람이 걷기도 좁은 길을 대형 트럭이 매일같이 지나다녔다. 마을은 순식간에 제 모습을 잃어버렸다.
 
상동면에 위치한 매리마을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헐벗은 야산이다. 산은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채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 위엔 공장이 아찔하게 들어서 있다.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명목으로 규제는 허술했다. 개발업자들은 사면이 25도가 될 때까지 마음대로 산을 헤집었다. 그 결과 지금 매리마을은 산사태 등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마을이 비루먹은 송아지 꼴이 됐다"는 나이 든 주민의 탄식이 마을을 맴돌았다.
 
김해지역 전역에서 이런 사례는 끝도 없이 많이 발견된다. 김해가 지난 몇 년간 개발이란 가치에 중점을 두고 도시정책을 시행해 온 결과다. 특히 훼손 피해가 가장 노골적인 부분은 산이다. 김해시는 2003년 7월10일 주거·상업·공업·관리·농림을 할 경우 산을 25도 경사까지 개발하도록 허용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경사도 25도를 높이로 환산하면 16층 건물 높이다.
 
▲ 김해시 한림면의 위성사진. 마구잡이로 들어선 공장으로 인해 산이 쥐에 파먹힌 듯한 형상이다.(왼쪽) 상동면의 위성사진. 길도 없는 곳에 일렬로 늘어선 공장이 기이한 광경을 연출한다.(오른쪽)

조례가 제정되자 공장주들은 헐값에 김해의 야산을 사들이고 공장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시는 산업을 발달시킨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보였다. 조례가 적용된 지난 7년 여간 모두 6천530개의 공장이 들어섰고, 그 중에서 조례에 따라 산이나 임야에 개별적으로 들어선 업체는 모두 6천312개다. 전체의 약 95%를 차지하는 수치다. 이는 경남지역 전체 등록된 공장 수(1만4천76개)를 감안했을 때, 35.2%라는 높은 수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환경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도끼로 제 발을 찍는 격"이라며 맹비난 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개발 위주 정책이 각종 환경 부작용을 야기했다"며 "결과적으로 김해에 '난개발 도시'라는 오명을 덧씌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부산(18도 미만)과 양산(21도 미만)같은 인근 도시들은 산의 개발 경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에 따르면 산을 무리하게 깎아서 개발하는 것은 환경오염은 물론 산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지난 여름 태풍 모라꼿의 영향으로 산사태가 난 김해시 한림면 신천 지역은 난개발 위험 지역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던 곳이다.
 
도시 계획 전문가들도 실리적인 입장에서 난개발을 비난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난개발은 기반시설의 부족 현상을 수반한다. 소규모 공장단지가 도시 인근지역과 떨어진 곳에서 산발적으로 개발될 경우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정상적으로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발업자는 소규모 단지별 필요 시설만을 설치하게 된다. 시청 도시계획과 조돈화 과장은 "공업 시설이라는 것은 제반 시설을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데, 야산에 공장을 지어놓고 시 예산으로 도로 등 제반 시설을 놓아달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조 과장에 따르면 도로 18km당 1백22억 원이, 하수도 7개소를 설치하는 데 모두 1천888억 원이 소요된다.
 
공장이 들어선 지역의 주민들도 피해를 호소했다. 주민들은 공사현장에 자재를 실어나르는 덤프트럭이나 제품을 운반하는 운반용 트럭이 길도 제대로 없는 산이나 마을을 다닐 때마다 심각한 보행안전의 위협을 받는다고 말한다. 또 기존의 주거 환경이 무너지면서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난개발은 공장주들에게도 궁극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주 후 공장 과밀화에 따른 기반시설 부족은 물론 이에 따른 물류비용 증가로 기업경영이 악화되는 구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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