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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로'가 있잖아시론
  • 수정 2019.07.10 09:35
  • 게재 2019.07.10 09:31
  • 호수 430
  • 11면
  • 진혜정 시조작가(report@gimhaenews.co.kr)
▲ 진혜정 시조작가

30여 년간 직장 생활에 몸을 담았다. 철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교육을 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었다. 하루하루 아이들이 변화는 과정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보람 있는 직업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내가 잘했니 네가 잘했니 하는 송사에 휘말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바람에 목이 아파서 성대 결절에 걸리기도 했다. 대화가 한정되어 있어서 일반 사회인들과 만나면 고지식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돌이켜보면 직장여성으로서의 삶은 고달팠다. 어린이집이 별로 없던 시절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일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정신무장을 해야 했다. 아침에 겨우 눈을 뜨면 밥 하고 국 덥히고 아이들 챙기느라 바빴다. 밥 먹는 시간을 재어보면 채 10분도 안 되는데 아침밥은 먹을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 옷 입히다 뛰어가 밥 퍼고 국 뜨고, 잠이 덜 깬 아이 씻기고 밥 먹이고 출근준비까지 하느라 늘 동동거렸다. 그 당시에 어린이집 차는 아홉시부터 운행을 하였다. 언덕배기에 있던 어린이집까지 무거운 아이를 업어서 데려다주고 학교에 출근을 하는 일은 매일 진을 빼는 일이었다.

신혼초기였을까? 아이가 아파 보채면서 잠을 못 이루어서 열이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밤을 꼴딱 샌 적이 있었다. 새벽같이 연락을 받고 달려오신 친정어머니께 아픈 아이를 맡기고 다음날 겨우 학교로 갔다. 파김치가 되어 늘어져 있는 나에게 선배 선생님께서 연유를 물으셔서 아이 키우며 학교 다니기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러나 나의 투정은 일갈에 외면되었다.

"아무리 힘들고 바빠도 너희들 세대는 지금 곤로가 있잖아. 곤로가 있어 심지에 불만 붙이   면 밥을 할 수 있는데 살림하며 직장 다니는 게 뭐가 어렵니? 이 좋은 시절을 못 누리고 죽   은 사람만 억울하지."

선생님 말인즉 자기들 젊었을 때는 연탄불 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불 조절을 잘 한다고 하여도 긴긴 겨울밤, 방을 데우다보면 새벽에는 연탄불이 꺼져 있어서 아침 밥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시골에 발령이 났을 때는 마을버스를 기다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 보면 아침에 불 조절을 잘 하고 간 연탄불이라 하여도 꺼져 있었단다. 번개탄으로 다시 불을 피우고 저녁밥을 하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석유만 넣고 심지에 불만 붙이면 되는 곤로의 고마움을 실감하며 요즘은 행복하다고 하셨다. 거의 사십년 가까이 된 요즘에도 나는 새로 나온 전기압력밥솥이나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인덕션레인지 등을 쓰면서 선배 선생님을 떠올린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여든은 족히 되셨을 선생님은 요즘 같이 더 편리해진 세상을 고마워하면서 살고 계시겠지.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이다. 혁명이란 수식어를 붙일 만큼 세상의 변화가 크다는 뜻일 것이다. 로봇,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드론, 자율주행차 등이 이미 생활 속에 파고들어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주고 있다. 은행에 가는 일도 줄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은행가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눈치를 보면서 조퇴를 내어야 했는데 이것 또한 많이 편리해졌다. 마트나 시장에 가야 장도 보고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고 했는데 요즘은 앉아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구매가 가능해졌다. 근처 유명한 반찬 집에서 밴드에 올린 메뉴를 보고 구매를 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말 그대로 여자들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살림하기가 편해진 세상이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그 선배 선생님 연배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젊은 선생님들이 축 처져 있는 것을 보고 연유를 물어본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밤새도록 아이가 아파서 잠 한 숨 못자고 새벽에는 자기도 응급실에 가서 링거를 맞고 왔단다. 염증 수치가 안 떨어져 큰 일 날 뻔 했다며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여전히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 사람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 때는 남편들이 육아는 나 몰라라 했는데 지금은 남편들도 한 번씩 조퇴를 하고 병원에 데려 가 준다는 것, 근무 중 육아시간이 생겼다는 것 등이다. 젊은 선생님들한테 '너희들 세대는 이제 전기압력밥솥이 있잖아. 살림하며 직장 다니는 게 뭐가 힘드니?' 라는 말은 안 나온다. 아무리 세상이 편해졌어도 직장을 가진 엄마들은 여전히 피곤하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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