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승수 독자위원·인제대학교 미디어센터 간사

친구야 서울은 지낼만하니? 지방은 연일 아우성이다. 지방청년의 유출이 심하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저출산 문제 때문에 갈수록 고령화된다고, 이러다 우리 지역 망하는 것 아니냐고. 그래도 무슨 수로 떠나가는 너를 붙잡겠니. 분명 너의 꿈은 그곳에 있고 너는 이미 그곳으로 떠나간 것을. 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어제 아침의 일 같아. 그때는 우리가 멀어진 이후의 삶을 상상해본 적 없었지. 그런데 선배, 동기들 할 것 없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났고 후배들 역시도 그래.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한 게 없어.

그런데 나는 김해가 좋아. 김해에 남았어. 조촐하게 식을 올리긴 했지만 결혼도 했고, 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집도 구했어. 아무래도 나는 여기를 떠나지 못할 것 같아.

한편으로 아쉬운 점도 있지. 대학 졸업을 앞두고 김해에서 직장을 구하러 다녔는데 결국 전공을 살리지는 못했어. 첫 직장은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이었지. 그것도 기계를 다루는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했어.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고? 어떻게든 김해에서 살아가고 싶었어. 김해에서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직장과 꿈의 개념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가까웠거든. 최선을 다해 일했고 휴식할 때는 책을 읽었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서 좋았지. 일하고, 월급 받고, 휴식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니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1년 반쯤 일하다 그만 뒀어. 자랑스럽게 여긴 회사는 '우리 회사'가 아니라 원청이라는 사실을 알았어. 하청에 의해 고용된 나의 시급은 정직원으로 받을 수 있는 시급에 비해 5백원이 적다는 사실을 알고 재계약을 뿌리쳤지. 정직원인 너는 내가 왜 고작 5백원에 부당함을 느껴야했는지 알 수 없겠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보다 더 부당한 처지에 놓인 사람도 있었거든.

당시까지 5년 째 하청에서 일하는 영철이 아저씨가 있었어. 중국에서 오셨지. 보통 2년이 지나면 원청에서 직접 정직원으로 고용했지만, 영철이 아저씨는 매년마다 하청에 소속되어 계약했어. 아저씨에게는 딸이 있어. 서울에 소재한 대학에 다니는데 아저씨는 대한민국의 발치 아래서, 중심 지역에 사는 딸에게 꼬박꼬박 등록금과 생활비를 보낼 뿐이었지. 가족도 보고 싶을 것이고 5년 동안 하청에 소속된 채 최저시급을 받아왔는데 전혀 불평하지 않았어. 아저씨는 말했지. "이곳이 아니면 갈 데가 없다"고.

그때서야 꿈이 생겼던 걸까. 부당한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어. 부산에 있는 작은 잡지사에 취직했지. 잡지 한 면당 내 월급에 가까운 돈을 따내는 임무가 주어졌어.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일했던 내게 광고기사로 영업을 뛰는 일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느껴졌어. 당시 나의 글은 돈 주는 이에 대한 휘황찬란한 수식어로 가득했었어. 그걸로 글을 좀 쓴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나는 또 금세 일을 그만 두고야 말았지.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하거나 포기해야할 수밖에 없는 걸까? 며칠 전에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는 친구들이 여럿 모인 곳에 다녀왔어. 서울로 갔다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온 친구가 있었어. 또 다른 친구는 농촌에 사는데 농사로는 생계유지가 안 돼서 위험한 작업환경을 무릎 쓰고 현장에서 일을 했대. 그렇게 일을 하다가 많이 다쳤어. 나처럼 기업의 하청구조를 불합리하다고 보는 친구도 있었어.

어쩌면 네가 서울로 간 것은 잘 한 거야. 그곳은 일자리가 많다며? 정직원으로 취직했다며? 대학시절에 갖던 꿈을 이뤘다며? 내가 겪는 것들, 내 주변 친구들이 겪는 고통을 네가 겪지 않기를 바라. 나는 네가 그곳에서 성공했으면 좋겠어. 내가 네게 바라는 성공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 '나는 무엇을 기대하나?'하고 말이야. 거기도 여기와 다를 게 없다면, 너는 도대체 왜 서울로 갔는지도 한번 다시 고민해보길 바랄게.

만일, 부모님과 친구들 곁이 그리울 땐 언제든 김해로 돌아오렴. 어느 누구도 너의 삶을 비웃지 않을테니. 네가 나약하다고 말하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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