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무역상 보호 위해 만든 반코
증기기관차 사용 위해 생긴 감가상각

결산서·국제회계기준·장부·부기 등
회계 규칙 탄생과 사건 흥미롭게 엮어

카네기·록펠러·골드만삭스 같은
세계적 부호와 기업 탄생 비화도 눈길



부기를 공부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탈리아가 부기의 발상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재무나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 해도 감가상각이 철도회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공인회계사나 세무사라도 기업의 내용을 공시하는 제도인 '디스클로저(disclosure)'의 시작이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들을 수도 있다.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는 복잡한 계산이나 용어, 절차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회계 실용서가 아니다. 15세기부터 지금까지 역사적 배경과 맥락 속에서 성장해 온 회계의 역사와 현주소를 살펴보는 책이다. 이를 통해 인류가 발전시켜 온 금융비즈니스의 변천사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짚어낸다.

따라서 이 책은 결산서, 국제회계기준, 예산, 기업가치 등이 탄생한 시대를 방문해 그러한 회계 규칙들이 생겨난 역사적 맥락과 배경을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회계 규칙이 탄생한 사연이나 계기가 된 사건, 인물과 관련된 비화들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회계의 필요와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반인에게 낯선 회계의 영역은 역사가 바뀔 때마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 중 하나다. 회계를 비롯한 금융 비즈니스의 시초는 이미 중세 유럽 때부터 시작됐다. 그 당시 부를 쌓은 개인 또는 국가는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상업과 금융 시스템을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무역 상인들을 보호하고자 만든 반코는 현금이 없어도 상업 활동을 가능하게 했으며, 환어음 거래를 제공해 상인들이 무현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 각 도시국가별 통화 환전 서비스를 시행해 수수료 사업을 발전시켰다. 이처럼 상거래의 규모가 커지면서 체계적인 기록이 필요했고, 장부·부기·대차대조표 등의 회계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15~16세기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가져온 메디치 가문의 은행 사업과 금융 네트워크의 시작을 비롯해 17~18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활약, 주식과 주주, 증권거래소의 탄생 등 근세 상거래의 변화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해상 무역의 발달은 금융 비즈니스를 체계화했고, 주식회사를 탄생케 했음을 설명한다.

19세기 철도 발명 이후 증기기관차를 장기간 사용하기 위해 만든 감가상각의 법칙, 카네기·록펠러·골드만삭스와 같은 세계적인 부호와 기업의 탄생 비화 등도 눈길을 끈다. 19세기 말부터 대공황 전까지 뉴욕의 주식시장은 철도회사 뿐만 아니라 제조회사, 라디오 및 통신회사 등 새로운 산업 분야의 주식이 인기를 모았다. 반면 사기나 내부자 비리 같은 무질서한 거래도 성행했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회계 제도의 법제화가 이뤄지고 현대적인 금융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급변하는 글로벌시대의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도 역설한다. 가령, 마이클 잭슨이 비틀스의 명곡인 '예스터데이', '렛잇비'의 저작권을 약 1300억 원을 주고 구입한 것을 예로 들면서 미래의 가치에 투자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역사의 흐름이 바뀔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과거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회계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미래의 가치에 투자하도록 돕는 금융 비즈니스의 모습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해뉴스

부산일보=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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