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산성의 웅장한 자태 너머로 보이는 분성산 정상.

인구 50만 김해의 발전상을 속속들이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김해 중심부에 있으면서, 가락국의 역사와 설화를 보듬고 있는 곳. 그리하여 김해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적확하게 살펴보고 가늠해 볼 수 있는 곳, 바로 분성산이다. 그렇기에 김해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산이자, 동네 이웃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산이기도 하다.
 
이번 산행은 '흑룡의 해' 새해를 맞아, 시가지 중심부에 있으면서 가락국의 고도 김해를 상징하는 산, 분성산을 오른다. 김해의 눈부신 발전상을 조망하며 아울러 김해의 무궁한 미래를 희망해 보는 산행이다. 활천고개 등산로를 들머리로 해서 체육공원-성조암-전망바위-산성마을-만장대-분성산 정상-구지봉 방향 능선으로 해서 장군차 자생군락지로 내려오는 코스다.
 
활천고개 정류소에서 주택가 언덕바지를 오르면 왼쪽 도로변 분성산 들머리가 보인다. 계단을 타고 오른다. 김해 시가지를 낀 산이라 등산객이 많다. 오며가며 따뜻한 인사 한 마디씩 건넨다. 입구 표지판에는 정상까지 2㎞라고 알려준다.
 
찬 날씨인데도 햇볕은 넉넉하다. 밭둑에는 아직 남겨둔 배추와 무가 겨울을 이러구러 잘 나고 있다. 몇 계단을 꾸준히 오르니 체육공원. 추위 속에서도 운동을 하는 시민들이 많다. 시가지 쪽으로 눈을 돌린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주변 시야가 환하다. 분성산의 지산 격인 남산도 동그마니 앉았고, 김해벌판도 열리기 시작한다. 서낙동강이 햇빛에 눈부시고, 멀리 남해바다까지 조망된다.
 
▲ 분성산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성조암 모습.

체육공원 갈림길에서 오른쪽 성조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곧바로 호젓한 오솔길이 길손을 반긴다. 시간을 편하게 하는 그윽한 길이다. 곧이어 돌탑 2기. 큰 돌탑과 작은 돌탑을 세워놓았는데, 큰 돌탑에는 탑돌이 길을 내놓았다. 새로운 한 해를 위해 탑돌이를 해 본다. 그리고 성심의 돌멩이 하나, 돌탑에 더한다.
 
길가의 소나무 세 그루, 서로 뿌리를 얽어 제 몸을 기대고 있다. 한 나무가 다른 나무의 뿌리를 얽어 지탱해 주고, 다른 나무가 또 다른 나무의 얽힌 뿌리를 얽어 서로 지탱해주고 있다. 나무들의 공생은 경이로워, 언제나 사람의 도리를 제시해 준다.
 
곧이어 성조암. 돌계단을 오른다. 계단 양쪽으로 산죽이 시푸르게 경구를 읊고, 단풍 든 마삭덩굴이 노목을 타고 오르며 제 이파리로 합장을 한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에 '신년 소원 등'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연꽃 등 아래 각각의 소망을 달았다. '건강하고 맡은 소임 충실히 하며 타의 모범이 되어라.' 자식의 갈 길을 축원해 주는 부모의 가르침이 마치 부처의 말씀과 다름 아니다.
 
대웅전 옆 큰 바위에는 용왕단 불사가 한창이다. 바위에 '용왕'과 용왕을 수호하는 '용'을 조각하는 중이다.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바다를 건너 무사히 가락국에 도착했기에, 바다 용왕의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함이란다.
 
산신각 쪽으로 길을 잡아 오른다. 본격적인 오르막. 뒤를 돌아보니 돛대산 능선이 신어산 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길 사이의 바위들도 제법 서 있고, 구석구석 마삭덩굴이 참나무 가지 사이를 끝도 없이 타고 오른다.
 
오르면서부터 조망은 계속 훤하고 시원하다. 고도를 높일수록 시야는 더욱 호쾌해진다. 주변경계에 아주 적합한 산이다. 그래서 산성이 있고, 봉수대가 있겠지만 말이다. 바위 한편에서 한숨 크게 쉬고 나니 전망대. 김해시가지가 발 아래로 잡힌다. 신어산 능선 밑으로는 안동공단이, 남쪽으로는 김해평야와 서낙동강이 펼쳐진다. 임호산, 함박산 밑으로는 내외동 아파트 단지들이 커다란 성채를 이루고 있다.
 
만장대 가는 능선으로 계속 길을 잡는다. 양 옆으로 시가지가 발길 따라 뒤따른다. 오른쪽으로 신어산, 왼쪽으로 용지봉, 김해의 두 진산을 거느리며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호활해진다.
 
만장대 안부에서 산성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곧이어 만나는 전망바위가 거대하다. 전망바위에 서니 부산의 명산들이 줄지어 펼쳐진다. 금정산,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 승학산, 아미산…. 그 밑으로 낙동강이 실타래처럼 물길을 풀며 바다로 향하고 있다.
 
산성마을 가기 전 산모롱이. 분산성이 길게 이어진다. 성의 암문(暗門)으로 추정되는 성문이 눈에 띈다. 높이 2m, 폭 1.5m 정도인데, 문 안쪽으로 옹성(甕城)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옛사람들은 적의 눈을 피해 이 문으로 비밀리에 통행을 했을 터이다. 이 암문에도 마삭덩굴이 오랜 세월을 함께 나고 있다.
 
▲ 만장대를 내려오면 만나는 해은사.

산죽 길 터널을 지나니 산성마을 임도가 보이고, 임도 따라 조금 오르니 해은사와 만장대 갈림길이 나온다. 만장대로 향한다. 곧이어 충의각. 분산성의 수축내력을 기록한 4기의 비석을 보존하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맞배지붕 아래 '흥선대원군 만세불망비'와 '정국군 박공위 축성사적비' '부사 통정대부 정현석 영세불망비' 등 4개의 비석이 안치되어 있다.
 
곧이어 분산성(사적 66호)이 보인다. 만장대 정상을 띠를 두르듯 쌓아놓은 '테뫼식'의 가락국 산성이다. 성곽 둘레 929m, 평균 폭 약 8m로, 축조와 개축을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산성 아래로 인구 50만 김해시의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길게 이어진 경전철이 봉황대. 수로왕릉, 국립김해박물관 등의 가락국 역사를 업고 미래로 향하는 것이다. 창공으로 비행기 한 대, 큰 원을 그리며 날아간다.
 

분산성을 돌아드니 봉수대 입구. 봉수대 오르는 길 암벽에 '만장대 기념목' 각서가 있다. '天生萬丈臺 我植千年樹 (하늘은 만장대를 만들었고, 나는 천년수를 심노라.)'란 내용이다. 일명 '천년수'가 만장대 큰바람 맞으며 '용 똬리' 틀 듯 가지를 힘겹게 뻗었다. 크지는 않지만 나무에 묻은 세월은 천년을 견디고도 남겠다.
 
만장대(323m). '만 길이나 되는 높은 곳.' 흥선대원군이 왜적의 침입을 막는 전진기지로서 김해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하사한 이름이다. 봉수대 뒤로 산죽에 가려 숨어 있는 바위암벽에 대원군의 친필과 낙관이 암각 되어 있다. 1870년경에 새겼다고 하는데, 활달하고 거침없는 필체에 웅혼한 기상이 새삼 느껴진다.
 
만장대 정상에는 1997년 복원한 봉수대가 서 있다. 봉수대에서 바라보니 가락국 사람들이 드나들었을 '철의 바닷길'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멀리 가덕도 연대봉도 눈에 들어온다. 연대봉 봉수대에서 봉화를 올리면 여기 만장대에서 되받아 봉화를 피웠을 것이다.
 
만장대에서 내려오니 산성마을과 북문 갈림길에 해은사가 보인다. 돌담이 가지런하다. 돌담 옆 나목들이 푸른 하늘을 받치고 섰는데, 그 빈 가지들이 빗금 치 듯 선명하고 명료하다. 불이문으로 들어서니 바로 대왕전이 사람을 맞는다. 대왕전은 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을 모셔놓은 곳이다.
 
문을 여니 향연이 아련하다. 정면으로 용상에 앉은 두 분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오른쪽 벽면에는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돌배에 파사석탑과 불경을 싣고 가락국으로 향하는 장면이, 왼쪽 벽면에는 허왕후가 별포(別浦) 나루터에 배를 대고 산신령에게 붉은 비단속곳을 바치는 장면이 그림으로 재현되어 있다.
 
▲ 해은사와 만장대 갈림길 부근의 충의각 /흥선대원군의 친필과 낙관이 암각된 만장대.

해은사에서 분성산 정상으로 향한다. 곧이어 마주치는 분산성 북문 터. 길을 잡아 하산한다. 능선 오솔길이 이어지고 곧 오른쪽으로 가야역사테마파크가 보인다. 드라마 '김수로'를 촬영했던 세트장을 '가야역사테마파크'로 조성하고 있다.
 
도로를 건너 곧바로 분성산 등산로로 길을 잡아 오른다. 한 10분여 거칠게 오른다. 왼쪽 편으로 김해 원도심이 보이고 구지봉 방면 능선길도 길게 이어져 있다. 서서히 국립김해천문대의 원형지붕이 보이자 바로 분성산(382m) 정상이다. 이곳이 '낙남정맥의 시발점'이란 팻말도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서니 서낙동강이 크게 보인다. 그 굵고 완만한 흐름이 김해평야를 적시고 있음이다. 정상 바로 옆에는 국립김해천문대가 위치해 있다. 천문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매점 밑 트인 능선 길을 택해 하산한다.
 
실낱같은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국립김해박물관이 보이고, 연지공원의 파란 호수물빛도 글썽이며 다가온다. 그렇게 시가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걷는 기꺼움은 더할 바 없다. 김해를 껴안고 가는 기분, 김해의 품으로 다가가는 기분은 은근한 설렘이 있다.
 
가파른 능선을 내려오니 곧 정자. 정자에서 잠시 신발 끈을 푼다. 바람 한 줄 휙~ 하니 지나가고, 왔던 길 쳐다보니 분성산이 바위산임을 알 수가 있다. 산 전체를 바윗돌로 뒤덮었다. 그 위로 천문대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것이다.
 
정자 왼쪽으로 난 능선 길을 택해 다시 내려간다. 계속 이어지는 시원한 조망. 오른쪽으로는 계곡이 깊고, 왼쪽으로는 구불구불 천문대로 이어지는 도로가 구절양장이다. 허왕후릉이 크게 보이고 구지봉도 손아래 잡힐 듯 가깝다.
 
날머리가 가까워지자 장군차의 시퍼런 잎사귀들이 눈에 들어온다. '장군차 자생군락지'이다. 허왕후가 아유타국에서 가지고 온 차 씨앗으로 싹을 틔운 차나무다. 차 중에 으뜸이라 하여 고려 충렬왕이 '장군차'라 명명했다 한다. 차 맛이 좋고 향이 은근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군차다.
 
마지막으로 급격히 쏟아지는 하산 길을 내리면 산행의 끝인 날머리에 도착한다. 이렇게 김해의 진산에서 길을 내린다. 시작부터 끝까지 김해를 바라보며 걷는 산. 김해의 역사와 함께 걷는 산. 김해의 미래를 생각하며 걷는 산…. 뒤돌아본 분성산은 조용히 말이 없다. 김해의 모든 이야기를 다 해주고 짐짓 모른 체 딴청인 것이다.
 
시간이 되면 날머리 부근의 백운대 고분군(경상남도 지정 기념물 제223호)도 잠시 들러 봄직하다.


Tip. 해은사 남근석과 여근석
해은사 산신각 입구. 굵직하고 든든한 괴석 하나가 떡 버티고 서있다. 얼핏 보기에도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 바위 두 개를 한데 포갠 것 같은 형상인데, 자세히 보니 바위가 아래위 둘로 쪼개져 있다. 그 중 위의 바위가 남성의 귀두모양을 닮은 것. 남근석이다.
 

▲ 해은사의 남근석(오른쪽)과 여근석.

남근석은 남자의 성기 모양을 한 자연암석이나, 암석을 조각하여 세운 것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섬기는 민간신앙 중 성기숭배의 대상이 성물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자손번창'과 '가문의 액막이'를 위해 치성을 드렸는데, 가장 보편적인 치성 방법으로 남성의 성기를 닮은 자연물에서 그 정기를 받고자 했다.
 
해은사 남근석도 자손번창의 상징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서 손이 귀한 집안의 여자들이 치성을 드리는 것이다.
 
남근석 옆에는 여근처럼 생긴 바위도 함께 있다. 여성의 성기 안쪽 부분과 흡사하게 닮았다. 여근석 아래로 예쁘게 생긴 동자승 인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치 어머니 품안에 안겨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남근석과 여근석을 함께 둠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이로써 인간사 발복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가상하기만 하다.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